모차르트(1756~1791)는 목관악기 클라리넷을 사랑했다. 화려하고 밝은 고음, 맑고 포근한 중음, 약간 탁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저음 등 클라리넷의 다채로운 음색은 모차르트의 총애를 받을 만하다. 이런 클라리넷의 특장을 잘 살린 걸작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이다. 죽기 두 달 전, 비엔나 궁정오케스트라의 제2 클라리네티스트였던 친구 스타들러를 위해 쓴 이 작품은 제2 악장이 특히 아름답다. 단명을 촉진한 과로, 끝내 벗어나지 못한 가난, 천재성의 발휘를 막는 신분사회의 장벽 등등. 모든 욕심과 원망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듯한 아다지오(느리게)의 유장한 선율은 모차르트 음악의 백미라 하겠다.
그 선율에선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불교의 ‘하심(下心)’이 묻어난다. ‘바다 뛰노니 은빛 파도가 부서지고/바람 멈추니 푸른 물결 맑게 흐른다/배는 천상의 집인 양/별과 달을 거두었네’. 서산대사(1520~1604)의 선시 경지와 닮았다. 풍랑이 잦아든 고요한 바다에 별빛과 달빛이 쏟아지듯이, 비우고 내려놓은 마음에 천상의 음악이 그윽이 스며든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분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하다.” 2010년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이 수필집 ‘텅 빈 충만’에서 얘기했던 무소유의 세계와도 포개진다.
이틀 후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귀향의 시간이다.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귀향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머무는 고향으로 간다는 의미에서다. 그 귀향은 하심이다. 비우고 내려놓지 않고서 어찌 근원과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 비우고 내려놓는 일이란 국민 앞에 20대 국회 성적표를 내놓고 겸허히 평가받는 것인데, 그런 자세를 보기 어렵다. 31.1%의 저조한 법안처리율, 1점대(4점 만점)에 그친 대한상의의 혹평 등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진지한 반성은커녕 정책과 비전이 사라진 이합집산의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 불황에 찌든 민생의 우울에 대한 걱정은 하는지 의문이다.
해서, 권한다. 이번 귀향길에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함께해 보는 게 어떨까. 비록 하심에 이르지는 못한다 해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될 듯해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