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武漢)시는 인구 1100만 명의 후베이(湖北)성 성도이다. 후베이성은 중국 상고시대의 터전으로, 3500년 전 은나라 유적이 발굴된 곳 또한 우한이다. 우한은 우창, 한커우, 한양 세 개 영역으로 이뤄졌으며 1911년 우창 봉기로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지역이다.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변곡점이 된 도시답게 이태백 소동파 등 내로라 하는 중국 시인들이 노래한 황학루 등 문화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우한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 역할도 크다. 중국 9개 성을 연결하고, 5대륙으로 통하는 ‘교통 허브’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양쯔강(揚子江·長江)을 낀 이 도시는 물이 많고 습해 여름엔 충칭 난징과 함께 ‘중국 3대 화로’로 통한다. 게다가 서고동저의 중국 지형 특성상 저지대인 데다가 사방을 공장 지대가 둘러싸고 있어 매연이 심하다.
중국 6대 도시의 하나인 우한에 한시적 도시 봉쇄령이 내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의 발병지이기 때문이다. 우한에서 번진 ‘우환(憂患)’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강타한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의 늑장 대응이다. 우한 봉쇄에 앞서 500만 명이 중국 각지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로 빠져나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우한 폐렴의 위험 정도를 중국 내에서 ‘매우 높음’, 지역 차원과 글로벌 수준에선 ‘높음’으로 격상하며 예의주시하는 이유이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해 ‘중국 대탈출’(엑소더스)이 빚어질 무렵 10여 일을 중국에 머문 적이 있다. 당시 가는 곳마다 ‘여기는 사스 청정지역입니다’고 강조하고, ‘김치와 마늘이 사스에 효과가 있다’며 식사 때 빼놓지 않고 내놓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특히 중국 정부는 사스 통계를 왜곡했다가 베이징의 군의관 폭로로 들통이 나는 곡절을 겪었다. 보건 당국 책임자와 광둥성장 등을 교체하고, 위생 상태와 보건행정을 완전히 바꾸겠다며 범정부적인 대책에 나서고야 겨우 사스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들에겐 베이징 올림픽 성공 개최라는 목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의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 사스의 교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사스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듯이 시진핑 주석이 나선 이후에야 긴박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 사이 우한 폐렴은 급속 확산하며 세계 경제가 출렁거린다. ‘우환’ 바이러스의 일상화 뒤엔 이렇게 뒷북치고 헛발질하는 정부가 있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