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가 밝은 지도 벌써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올해도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린다. 유럽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2020 UEFA 유로컵과 남미 월드컵으로 불리는 코파아메리카가 축구 팬을 설레게 한다. 무엇보다 오는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17일 동안 열리는 제32회 하계 도쿄올림픽은 스포츠 팬을 열광케 할 것이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뜨거운 여름밤 더위를 식혀줄 ‘TV 피서’로 벌써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얼마 전 싱가포르의 태권도장을 방문해 수련자들의 열정을 보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태권도의 위상에 대해 느낀 뿌듯함과 함께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정식종목 배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데 대한 우려가 함께 떠올랐다. 물론 태권도를 배우려는 싱가포르 현지인이 점차 늘어난다는 태권도장 관계자의 말에는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태권도가 전 세계 204개국 1억 명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데는 수양과 자기방어, 화려한 발기술, 건강 관리 등 여러 매력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마도 올림픽 종목이라는 프리미엄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발 펜싱’으로 이야기되는 단조롭고 지루한 경기 방식 탓에 태권도는 잊을 만하면 올림픽 종목 퇴출 후보로 거론된다. 특히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가라테를 정식종목으로 만들어 태권도를 위협한다. 심지어는 태권도를 가라테의 아류로 비하하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일본은 가라테를 띄우기 위해 일본 국기(國技)에 해당하는 유도와 스모 경기를 하는 특별한 장소인 부도칸(武道館)에서 경기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태권도 경기는 도쿄 외곽의 일반 다목적 경기장을 배정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라테가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보편성과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2028 LA올림픽 정식 종목 재진입을 시도할 수 있어 우리 태권도계는 긴장과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권도가 가라테의 아류라고 국제 사회에 홍보하고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의 공세에 맞서 태권도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이자 올림픽 종목으로서 위상을 지키려면 우리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스포츠 선진국에 걸맞은 외교력 강화가 절실하다. 스포츠 외교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재 우리나라 IOC 위원은 유승민(선수위원)과 이기흥(국가올림픽위원회) 두 명이다. 이전에 우리나라가 IOC 무대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황금기에는 세 명의 위원(김운용 박용성 이건희)이 활약했다. 유승민 위원의 임기가 2024년까지라는 걸 고려하면 정부와 체육계는 미리 IOC 위원 후보를 발굴해 황금기를 다시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태권도가 지닌 본연의 가치, 즉 도(道)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태권도는 기술적 면에서는 세계적인 스포츠로 인정받지만 정신적인 면은 소홀히 다뤄져 왔다. 최근 독일의 한 태권도 도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수련 과정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없었고 코치는 물론 수련생 대다수가 도복을 아예 입지 않거나 하의만 입은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태권도가 스포츠 종목을 넘어 글로벌 무예로 전 세계에 뿌리내리려면 반드시 정신적인 면이 잘 알려져야 한다. 전 세계 1억 명 동호인의 마음에 경외심과 존경심으로 우리 고유의 무예 태권도가 자리 잡는다면 올림픽 종목으로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영산대 태권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