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으로 전 세계가 난리다. 폐렴의 확산 가능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경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돌아가지 않고 있고, 중국 내 자국인 이동이 줄면서 중국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 사람의 해외여행도 감소한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도 한국이 받을 경제적 충격은 대단히 크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다. 우한 폐렴이 한국경제에 큰 짐이 될까 봐 참 걱정이다. 그저 이 사태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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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이런 일을 일컬어 블랙스완 사건이라고 한다. 스완은 백조다. 블랙스완은 검은 백조를 말한다. 이 자체가 모순이다. 백조라는 동물이 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될 법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블랙스완 사건이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우한 폐렴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심심치 않게 터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경제는 멍이 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뾰족한 수가 없다. 경제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처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는 경제체질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 있었다. IMF 시대다. 이것은 한국에 엄청난 블랙스완 사건이었다. 잘나가던 한국경제가 순식간에 고꾸라지면서 나타난 것이 IMF 시대다. 한국은 1980년대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맞았다. 경제 성장률이 아무리 낮아도 7~8%를 넘어섰다. 90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와중에 블랙스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급격한 환율절상 때문이었다. 한국의 무역흑자가 지속되자 원화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 1985년 기준 1달러당 약 900원이던 환율이 90년대 초반이 되자 700원대까지 절상되었다. 환율이 절상되면 제품가격이 비싸진다. 문제는 한국 제품의 품질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한국제품의 글로벌 경쟁력이 뚝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기업과 국가의 빚이 폭증했다.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썼던 것이다. 해외 투기자본이 이것을 눈치채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한국경제는 맥없이 무너졌다. 1997년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IMF로부터 195억 달러를 빌렸다. 이 일로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재벌기업들이 무너졌고 은행이 통폐합되었으며 길거리에 나앉은 국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한국은 놀랍게도 3년8개월 후인 2001년 8월 빌린 돈 전액을 갚았다.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IMF가 터지자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를 시작했다. 장롱 속에서 잠자던 금부터 애지중지하던 금반지 그리고 아이들 돌잔치 때 선물 받은 금이 국가를 위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국민적 성원이 IMF시대를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본질은 아니다. 이 불가사의한 일을 설명하려면 국가의 경제회복탄력성을 이해해야 한다. IMF시대를 빨리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국내에 제조업이 살아 있어서였다. IMF사태가 터지자 달러당 환율이 800~900원에서 한때 1900원까지 치솟았다. 외국 바이어 입장에서 보면 한국제품은 1+1 세일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한국으로 주문이 다시 밀려들었다. 이런 회복탄력성이 있어 한국경제는 살아날 수 있었다.
국가의 경제회복탄력성을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제조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중요하다. 혹자는 대신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허구다. 서비스업은 평균적으로 제조업보다 생산성이 낮다. 임금 등에서 제조업 생산성을 능가할 만한 서비스업은 금융업 등 몇 개가 안 된다. 불행히도 한국은 금융업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할 역량이 부족하다. 그리고 제조업은 서비스업을 작동시키는 기반이기도 하다. 제조업 주변에는 다양한 서비스업이 성황을 이루게 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한사태처럼 경제에 충격이 왔을 때 이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경제회복의 축도 제조업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산업규제 총량을 줄여야 한다. 한국의 BTS가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된 이유를 아는가? 가요산업에 아이돌 가수 육성을 억제하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어린 아이돌 가수를 육성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었다. 이 규제가 한국에는 없었다. 90년대 초, 당시 유명 가수였던 이수만(현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일본 음악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때 길러진 아이돌이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다. 일본에서 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일본이 진원지가 되어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로 이들의 인기가 퍼져나갔다. 이것을 보고 박진영(JYP)과 양현석(YG)이 따라 들어왔다. 오늘날 K-POP의 토대가 이때 마련되었고 BTS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 한국경제의 회복탄력성은 어떨까? 불행히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국내 제조기반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지금 한국의 산업단지에는 공장매물이 쇄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출할 수 있는 기업 수가 줄게 되고 동시에 경제회복탄력성도 약화된다. 정부의 산업규제도 엄청나다. 정부는 규제를 줄인다고 하지만 기업은 규제로 목 끝까지 허덕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빨리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을 바꿔 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제조업이 무너지고 규제로 새로운 싹들이 자라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그렇게 되면 블랙스완 사건에 직면했을 때 회복이 느리거나 회복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우한 폐렴이 그 예다. 이것을 그저 국민 건강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경제 문제다. 그래서 어떤 블랙스완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약화되면 한국경제에 폭탄이 될 수 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국가가 버티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앞서 조치하는 곳이 정치권과 정부다.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