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의 ‘구변’ 편에 나온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마라(無恃其不來).”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적이 공격하지 않기를 기대하지 마라(無恃其不攻).”
왜 그런가? 올 적은 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격해올 적이라면 공격해오게 돼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격언 속에는 냉혹한 인과 원리가 들어 있다. 원인이 누적되고 시간이 쌓이면,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올 것은 온다. 피할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이 세상을 덮쳤다. 그 현장과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데 대한 무서움과 무력감이 함께 엄습해 옴을 느끼고 있다. 엄청난 기세와 분량으로 쏟아지는 보도 증언 의견과 동영상을 시시각각 챙겨 보고 있는데도, 이에 관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사태는 이제 막 시작됐으며, 바이러스에 관해선 아는 게 없고, 공포 혼돈 불안이 쉴 새 없이 갈마드는 템포가 너무 빨라 어렵고 혼란스럽다.
그러면서도 줄곧 밀려드는 생각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우리가 어떤 세계,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방에 경악할 만한 수준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이것은 원인이 누적되고 시간이 쌓여 결국 오기로 돼 있던 적병이 필연으로 쳐들어온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초(超)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설명하는 전문용어로 쓰인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이 세계가 바로 초연결 사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고, 지난 9일 첫 사망자가 나왔으며, 지난 23일 우한 봉쇄령 조처가 취해졌다. 상주인구 약 1100만 명에 비상주인구 약 400만 명, 서울 면적보다 약 14배 넓은 우한은 순식간에 ‘유령 도시’처럼 멈춰버려 비현실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전체 31개 성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는 늘고 있다. 확진자가 나온 중국 이외 나라는 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호주 한국 프랑스 독일 베트남 캐나다 스리랑카 네팔 대만(그리고 홍콩 마카오)으로 계통도 없고 종잡을 수도 없고 빠르다.
세계 판도에서 증시부터 생산·무역·소비·성장·정치·교류·스포츠·교통·관광· 여행· 공연·집회·행사까지 악영향을 받는다. 그 와중에 그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종횡으로 우리 감각과 뇌리를 덮는다. ‘아직 부산은 괜찮겠지’라는 속짐작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거대한 규모의 교류와 초연결의 이 세계에서는 오늘 ‘아직 괜찮아’ 본들 내일 어찌 될지 모른다. 이번 사태가 정초에 화들짝 충격적으로 상기시켜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러하다. ‘우한 폐렴’이 덮친 세상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그 세상 속에 있다.
이것이 ‘평지돌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원인이 누적되고 시간이 쌓인 결과, 결국 오기로 돼 있던 적병이 실제로 쳐들어온 형국이 아닌지도 자꾸 묻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본들 아무 소용없다. 올 적은 오게 돼 있다. 이번에 요행으로 잘 넘어가도 소용없다. 또 온다. 우리 문명과 우리가 사는 법에 관해 되짚고 곱씹어봐야 할 것도 많다. 대량생산 무한소비, 욕망을 절제하려는 것을 좀스럽다고 비웃는 자본주의 문화, 이익이 된다면 첨단 과학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들여 기어코 쟁취하고 뺏는 초국적 거대기업의 성공 행진 그리고 우리 일상에 스민 생활과 문화 측면까지.
이런 예를 들어볼 수 있겠다. 고기를 값싸게 많이 공급하려고, 발달한 과학기술을 동원하고, 밀식 사육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이용해, 가축을 사육하자 신종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가축이 생명을 잃는 일이 반복된다. 과연, 이런 패턴이 오늘 이 사건과 무관한가?
지금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 괴질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성급할 수 있지만, 내친김에 하고 만다. 어느 시점에 가서 이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과학이나 인문 분야 종사자 또는 과학·인문의 융합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분들 사이에서 인문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곱씹고 반성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글도 많이 나올 것이다. 아마, 지금의 세계도 바꿔야 하고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가 모일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때까지는‘힘겹게 역경에 맞서고 있는 우한 사람들, 힘내시라!’고 속으로 응원하며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참고로 ‘손자병법’이 알려주는 ‘어차피 올 적에 대비하는 법’은 두 가지다. 원인을 찾아 없애든지, 잘 대비하든지.
편집국 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