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출간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는데, “북한에 먼저 물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안과 이를 찬성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라고 송 전 장관은 주장했다.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고 유력 주자였던 문 전 대표는 장문의 반박글을 SNS에 올렸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내가 거짓말 하겠나”며 굽히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워낙 거셌던 때라 파장은 잦아들었지만 공치사나 변명용 회고록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드물게 이슈가 됐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1953년 헤밍웨이를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게 회고록 ‘2차 세계대전’이었다. 생전에 73권의 책을 쓴 처칠은 특히 참전과 종군기자 경험으로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전쟁을 언어로 바꾸고 언어로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미국은 회고록 때문에 정치적 후폭풍이 생기는 일이 비교적 적다고 한다. 하지만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의 ‘임무’는 예외였다. 자신을 장관으로 발탁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쟁 지도력이 미비하고 의지가 박약하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한국 전직 대통령 중 회고록을 남긴 사람은 이승만 최규하 박정희 박근혜를 제외한 7명이다. 퇴임 후 가장 빨리 쓴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가장 늦은 사람은 퇴임 29년 만에 책을 낸 윤보선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회고록은 공공기록이 말하지 않는 권력의 이면을 보여주면서도 국가운영 최종 결정권자의 마음 행로를 남긴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사료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 변명이나 전임자 비난이 주종을 이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자책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록이 판매고는 가장 높았다고 한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그 일이 일어난 방’이 미 정가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아직 출간되진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타격을 주려고 우크라이나 정부를 동원하려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트럼프 진영에선 “배신자”라며 이를 가는 모양새지만 트윗으로 볼턴을 해고한 게 트럼프고 보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고만고만한 민주당 후보들 때문에 ‘트럼프 대 트럼프’ 양상으로 흘러가는 미 대선에 볼턴의 뒤끝 회고록이 변수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