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바’는 공포와 마주한 인간 군상을 다뤘다. 테러를 피해 카페에 숨은 손님들은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자 불안에 휩싸인다. 정보가 차단된 공간에서 근거 없는 추측이 확산한다. ‘바이러스 괴담’도 진실처럼 퍼진다. 불신은 ‘혐오’와 ‘배제’를 낳더니 살인을 불렀다. 누군가는 공포를 이용해 권력을 움켜쥐려 한다. 뿌연 안개에 숨은 괴물체에 맞서는 영화 ‘미스트’나 좀비와 아귀다툼하는 ‘부산행’과 스토리가 닮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대하는 우리 현실도 영화와 다르지 않다.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조작된 유튜브 동영상은 애교 수준이다. ‘혐중 정서’에 기대 중국과 민간·경제교류를 끊자는 주장까지 거리낌없이 나온다. 10억 인구를 적으로 만들자는 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마스크 논란도 그렇다. 외교부가 중국 우한시에 마스크 200만 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 장을 긴급 공수한다고 발표한 날. 한 정당은 논평을 통해 “우리 국민은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구할 수 없어서 난리”라고 반대했다.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잡히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진정될 수 있을까. 오히려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더 설득력 있다.
SNS에 공포만 판치는 건 아니다. “알코올로 빈병을 소독해 에탄올·정제수·글리세린을 8 대 1 대 1 비율로 넣고 흔들면 손 세정제 완성. 유쾌하게 ‘품절 공포’를 이겨내요.”
중국을 도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신종 코로나가 1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갉아먹는다고 경고했다. 국내 연구기관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53% 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삼성전자 매출의 24%가 중국에서 발생한다. 중국 경기 악화는 곧 국내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중국과 민간교류가 끊기면 당장 국내 대학이 곤란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7만 명의 중국인 유학생(석·박사 과정 포함)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은 성균관대는 중국인 학생이 열 명 중 한 명꼴이다. 중국인의 입국을 막는다면 당장 재정난에 빠질 국내 대학은 차고 넘친다. 한중은 오래전부터 운명 공동체다.
팩트체크로 공포를 잠재워야 할 언론 역시 불안을 부추겼다. 우한 교민의 격리장소가 아산·진천으로 결정되자 정치적 해석도 등장했다.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고 봉 취급한다”거나 “여당의원 지역에서 야당의원 지역으로 옮겼다”는 말이 지면을 채웠다. ‘혐중’이 우한 교민에 대한 거부로 옮겨 붙은 셈이다. 현지인의 말을 인용·보도했다고 해서 갈등·차별조장을 금지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을 위배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방송기자연합회가 혐오를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를 자제하자는 공동 의견서를 낸 이유다.
공포에 맞설 무기는 과학이다. 국내 두 번째 확진 환자가 3일 증상이 완쾌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번 환자는 폐렴 증상 호전은 물론 유전자 증폭 검사에서도 ‘음성’으로 확인됐다. 앞서 호주 멜버른대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 원인 바이러스(2019-nCoV)를 분리·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백신 개발과 바이러스 독성 규명의 문을 연 것이다. 우리나라 보건당국도 신종 코로나 검사 시간을 24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인 유전자 검사법의 검증을 끝냈다. 새로운 검사법은 전국 18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시행된다.
건강한 집단지성도 깨어나는 추세다. 아산에서는 우한 교민을 따뜻하게 포옹하자는 ‘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이란 슬로건이 등장했다.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라는 응원은 신종 코로나를 이겨내는 ‘백신’이다. 아산 시민은 우한 교민의 격리 장소를 선정할 때 지역사회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찬반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세력에게 ‘공포 마케팅으로는 표를 살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도 표출했다.
2002년 중국 남부에서 발병한 사스가 무려 774명의 사망자를 냈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신종 코로나 초기 대응 역시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 ‘미스트’처럼 국가의 탐욕이 역병을 확산시킨 것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우한 짜요(우한 힘내라·武漢加油)”를 외치는 연대의 물결이다. 국내에서도 호들갑 대신 “과학의 힘을 믿고 차분히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화 ‘더 바’와 ‘미스트’의 결말은 비슷하다. 현대기술을 믿고 과도한 공포와 유언비어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모두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과학을 이기는 공포는 없다.
편집국 부국장 ns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