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정기주주총회가 열립니다. 이는 상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회사의 법정 의무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3월에 정기주주총회를 엽니다. 법인세법에서는 사업연도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제출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절대 다수의 기업이 12월 결산을 택하고 있기에 법인세 신고를 위해서라도 결산일로부터 3개월 이내인 3월 31일 전에는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주총회를 가보면 그 모습은 제각각 다릅니다. 회사의 조직문화와 경영진이 추구하는 가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주주총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주주총회를 법정의무를 다하기 위한 감사보고를 하고, 법인세 처리를 위한 재무제표를 승인하고, 등기임원을 선임하며,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를 책정하는 정도의 요식행위라고 생각하는 경영진이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주총은 경영진이 주주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주주들을 만나려면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1년에 한 번인 정기 주주총회는 주주들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회사의 행사에 참여하게 만드는 훌륭한 명분이 됩니다.
이제는 주주총회가 법정의무 이행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틀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습니다. 법정의무를 위한 절차는 그것대로 충실히 진행한 다음, 힘든 발걸음을 한 회사의 주주들에게 어떻게 가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본사가 위치한 미국 오마하에서 매년 5월 주주들을 위한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정기주주총회는 첫날 버크셔 해서웨이 포트폴리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시·판매하는 쇼핑데이로 진행되고, 둘째 날에는 연례 미팅을 통해 워런 버핏과 주주들이 중요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Q&A세션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배치해 이 축제에 참여하기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주주에게 발언권을 주고 실질적 의미의 토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지막 날은 자선행사의 일환으로 5㎞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한국에서도 창업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주주총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지인의 초대로 안상현 대표가 운영하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의 정기주주총회에 참여했었는데, 그야말로 주주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주주총회는 안씨막걸리가 운영하는 이태원의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는데 입장하자마자 미쉐린가이드에 빛나는 안씨막걸리의 독창적인 음식들과 전국 곳곳에서 공수해온 전통주들이 제공되었고, 매년 주주총회에서 만나 친해진 주주들끼리 흥겨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주주총회가 시작되자 먼저 주주들을 위한 연례보고 발표가 있었고, 중간중간 안 대표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수치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주주들과 안 대표 간의 열띤 토론의 장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애정을 가지고 회사에 투자를 한 주주들과 그 책임을 짊어지고 사업을 이어나가는 창업자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인데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기 주주총회는 주식회사의 가장 중요한 리추얼(Ritual)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그 시간을 어떻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게 채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경영진의 의무입니다. 주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어떻게 우리가 가진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것인지,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에 대해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변호사·법무법인 율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