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소설가 길남 씨는 부산 수영교차로를 지나며 이런 플래카드를 목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영 전통 달집놀이가 취소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아, 길남 씨 머리가 혼돈스럽다. 정월대보름 달집놀이나 짚불놀이의 의미가 무엇인가? 일 년 중 가장 큰 달님 앞에서 활활 불꽃을 태워 재앙·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축제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 쫓겨나야 할 질병 놈이 달집놀이를 KO시켜 버렸다.
2019년 마지막 날 희망찬 새해를 한껏 기대하며 1초 1초 카운트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정작 2020년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바이러스, 코로나, 폐렴 같은 우울한 단어들이다. 대형 마트 즉석코너에서 마스크를 쓰고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이기도 한 길남 씨. 이거 뭐 도대체가 고객님 얼굴 보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이니…. 종일 멍청히 서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환청을 몇 번이고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텅 빈 마트 바닥을 바라보던 바로 옆 떡집 이모의 한마디. “아따, 너르네! 넓어. 드레스 차려입고 한 스텝 밟아 주야 되나?”
며칠 전 창원에서 옷가게 하는 친구에게서 온 문자가 자꾸 생각난다. ‘이놈의 바이러스 때문에 내 장사도 우한(오한)이 드는구나….’ 길남 씨도 몸을 부르르 떤다. 안 그래도 추운 입춘 한파가 더 춥다. 언제부터인가 이놈의 전염병은 일상이 돼버렸다.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메르스 돼지열병 에볼라…, 최근 10년 동안 한 번쯤 공포의 대상이 됐던 이름을 떠올려 보니 모두 한 끗발 있었던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사람·동물 가릴 것 없이 신종이란 이름이 붙은 바이러스가 1년이 멀다 하고 기승을 부리는 시대가 되는 모양이다.
이런 판국에 들려오는 소식도 가관이다. 마스크가 동나다 보니 이걸 사재기해서 매점매석하려다 발각된 업체가 있고, 부산에서는 유명해지려고 자기가 우한에서 왔다고 외치며 지하철에서 기침하는 퍼포먼스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도 있다. 재난 상황에 영민하게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건 영민한 게 아니라 약삭빠르거나 생각이란 게 아예 없는 경우가 되겠다.
지나간 바이러스들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불과 몇 달 전 돼지열병으로 시끄럽던 때였다. 길남 씨는 족발 코너의 족발이 팔리지 않을까 봐 상당히 고민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놈의 족발이 더 잘 팔렸다. 국산은 돼지열병이 의심스러우니까 원산지가 외국산인 제품을 더 많이 찾는 것이란 엉뚱한 해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구제역의 추억도 떠오른다. 9년 전 그러니까 2011년 구제역이 창궐했던 시기, 방역 현장에서 근무했던 조카가 길남 씨에게 들려줬던 얘기다. 살처분이 이뤄졌던 어느 농가에 엉뚱하게 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더란다. 물었더니, 살처분 이전에 가출했던 녀석이 작업이 다 끝난 며칠 후, 새끼까지 배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이놈을 어떡해야 하나…”라고 중얼거렸다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중국에서는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로 기록된 1986년 옛 소련 이야기를 그린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이 인기라고 한다. 엄청난 인재(人災)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던 당시 소련 정부 모습이 현재 중국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것이다. 질병은 실체 없는 공포로 다가와 안 그래도 각박한 인심을 더 메마르게 하고, 산업·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을 얼어붙게 한다. 그 틈새에서 눈물 흘리는 수많은 사람이 생긴다. 그들이 다시 웃으려면 재난 위기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 건강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재난은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이다.
소설가 길남 씨는 신종 코로나 유언비어와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를 이용하는 썩은 정치인들 모습을 유심히 살핀다. 작가의 눈으로 이 혼란을 똑똑히 담아 둬야 할 의무 때문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의 대사가 떠오른다. “진정한 위험은 거짓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면 무엇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