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라 하면 미국의 벤 호건(1912~1997)이 꼽힌다. 프로 통산 63승, 메이저대회 9승의 성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샘 스니드와 잭 니클라우스보다는 좀 뒤지는 기록이다. 그럼에도 호건이 위대한 골퍼로 존경 받는 건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다. 우선 자신의 스윙 단점을 엄청난 연습으로 극복해냈다. 특히 다리뼈가 부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1년 만에 복귀해 1950년 US오픈 정상에 올랐다. 심각한 부상 탓에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의 선수생명은 끝난 것처럼 여겨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이겨냈다.
16년 전 한국 여자프로골프 무대에서 여고생 아마추어가 화제를 모았다. 내로라 하는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한 데다, 여러 대회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낸 까닭이다. 프로로 전향한 이듬해에는 대회 마지막 날 7타 차를 뒤집는 대역전 우승 드라마까지 펼쳤다. 주인공은 박희영이었다. 200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 전까지 그는 이처럼 아주 잘나갔다. 더구나 그의 스윙은 ‘교과서’라 불릴 만큼 정평이 났다. 미국 투어에서도 2013년까지 2승을 거두며 존재감을 나타냈으나 이듬해부터 흔들리며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상금랭킹은 100위 밖으로 밀려났고, 지난해에는 투어 풀시드마저 잃으면서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그랬던 박희영이 지난 9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호주 빅오픈에서 7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아울러 LPGA 투어 한국 선수 최고령 우승기록도 ‘32세 8개월16일’로 갈아치웠다. 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골프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우승은 신이 준 선물 같다’는 그의 표현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덕이다. 지난해 Q(퀄리파잉)시리즈의 지옥 같은 레이스를 통과해 투어 시드를 되찾고 이번 우승을 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정신력을 가다듬었을지 미뤄 짐작이 된다.
한국 여자골프 선수는 30세가 넘으면 아예 노장 소리를 듣고 ‘조로’ 현상이 뚜렷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LPGA 투어 전체의 최고령 우승 기록만 해도 2003년 캐나다여자오픈에서 베스 대니얼(미국)이 세운 46세 8개월29일이다. 미국의 ‘살아 있는 골프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는 더하다. 올해 80세 생일을 맞아서도 “나는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니, 그의 열정과 정신력이 놀랍기만 하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