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세계적 확산으로 창졸간에 바이러스 취급을 받는 유럽 거주 아시아인들의 절규다. 유럽의 일부 언론조차 인종차별적 기사를 쏟아내자, SNS를 통해 광범위한 해시태그 운동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비록 중국인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가 인터뷰 중 마른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조롱과 비하에 시달린 걸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급기야 우리나라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가 세계 최대 규모 청원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아르지’에 차별과 혐오를 멈춰달라는 청원을 올리기까지 했다.
이 같은 혐오는 서양인의 동양인 차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도 혐오 바이러스에 전염되고 있다. 국내 거주 중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불신, 비하, 가짜뉴스 등이 넘쳐난다. 손흥민 선수가 당한 유럽인의 인종 차별엔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 중국인을 혐오하는 이중적 행태이다. 더욱 우려되는 건 혐오의 대상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미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물론, 접촉자를 향한 시선도 곱지 않다. 증폭되는 불안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지나친 혐오감 확산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어서 우려가 크다.
일부 정치권의 대응도 실망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조장하는 듯해서다.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중국에 300만 개의 마스크를 지원하는 게 합당하냐고 다그쳤지만 근거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취약계층 마스크 지원 예산을 밀실에서 삭감했다는 가짜뉴스를 주장하기도 했다. 야당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잘못된 사실까지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건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총선 정국에 어떻게든 표심으로 연계하려는 얄팍한 술수다. 말로는 초당적 대응 운운하지만 정치가 되레 혐오를 키우는 또 다른 숙주가 된 꼴이다.
정부의 대처 역시 여전히 미덥지 않다. 사스와 메르스라는 홍역을 치르고도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곳곳에서 방역 등에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5년 전 38명의 목숨까지 앗아간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두꺼운 백서까지 펴내고 다양한 향후 대책도 발표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물론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실시한 시민 인식 조사에서 메르스 때보다 사회와 정부의 대응이 나아졌다는 평가도 있긴 했다. 그러나 당시보다 다소 진전됐을 뿐, 국민 불안감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인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메르스 사태의 학습효과가 없진 않았지만 이는 정부보다 오히려 민간 영역에서 더욱 돋보였다.
신종 코로나의 확산 정도에 따라 혐오 바이러스 또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엄습하는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는 한층 성숙된 시민의식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본다. SNS를 통해 확산된 ‘우리가 아산이다’라는 응원은 그중 하나다. 중국 우한의 교민 격리시설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이 결정됐을 당시만 해도 지역주민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됐다. 결국 일부 주민이 격리시설 앞에 트랙터를 동원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있었지만 철거에 순순히 응해 충돌을 면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시민은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무사히 돌아가길 빕니다’란 내용의 글을 올리며 격리된 교민을 따뜻하게 품었다.
이번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확산세가 다소 주춤거리는 모양새다. 지금이 중대한 기로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 정부의 철저한 방역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혐오와 배척이 아닌 배려와 공동체 의식이다. 혐오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리긴 해도, 우리는 이미 메르스 때와는 다른 희망을 보고 있다. 거리를 메운 수많은 마스크 행렬이 팽배한 불안과 공포의 표징일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여기엔 자신의 안전 못지 않게 타인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배려의 정신도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스크는 혐오가 아닌 연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신종 코로나까지 경험한 지구촌에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이 됐다. 더욱이 다양한 변종으로 강도 또한 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처럼 불가피한 역병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인류에게 주어진 숙명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전염병 못지 않게 위험한 게 서로를 적대시하는 혐오 바이러스라는 점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는 유럽 내 아시아인의 절규에서 보듯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우리가 아산이다’고 외치는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확인한 것은 수확이다. 결국 희망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