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쯤 연극 한 편을 보았다. ‘다녀왔습니다’는 작품으로 경남 창원 마산지역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동인 극단 불씨촌(1977년 창립)이 기획·제작했다. 공연 장소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근처 ‘명배우 봉하극장 콜로노스’였다. 배우 명계남 씨가 단장을 맡고, 뜻을 같이한 여러 사람의 협력으로 극장을 끌고 나가는 것으로 안다.
극장 주변이 공장지대라 그런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 극장 역시 폐공장이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예다. 거기엔 ‘탕비실’이라 불리는 카페와 갤러리 공간이 있다. 실내를 둘러봤다. 상징적이고 다정한 소품이 눈길을 끌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글씨와 사진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의 한정판 LP ‘그 사람 노무현’을 볼 수 있었다. ‘상록수’를 부른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첼로 연주를 즐긴 고 노회찬 의원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발목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이곳 주변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으로 명소가 됐지만 막상 오가기 쉽지 않다. 교통편도 여의치 않고 연극 한 편 보려고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지난달 국제신문 문화면에 부산 연극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부산 연극을 포함해 지역의 연극일 경우 그 위기감이 더욱 가파르다. 중앙에서 보면 지방은 변두리고 주변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인식한다. 우리의 문화적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산의 청춘나비 소극장과 한결아트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보도를 통해 들었다. 2016년 자유바다소극장이 폐업한 지 5년도 안 되어 또 운영을 중단한다는 보도는 상황의 심각성을 전한다. 이들이 지역 연극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애써왔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의 아쉬움은 더 컸다.
지역 소극장이 잇따라 쓰러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운영난이다. 부산 연극계는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잃어버린 관객을 끌어들이겠다. 둘째, 중·장년 대상 연극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 셋째, 소극장이 입주한 건물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과 별도의 무대장비·소품 보관 공간을 마련하겠다. 부산시도 예술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방식의 지원 계획을 냈다. 시가 구상하는 센터는 보관소를 비롯해 연습공간, 공연장, 아트살롱, 아카데미 등을 포함한다.
미국의 경우를 떠올려본다. 미국뿐 아니라 문화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에서는 지역의 고유성이 지닌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미국 연극계는 언제나 지역을 주시한다. 광활한 미 대륙에는 각 지역에 각각의 대학이 산재해 있다. 그곳에는 연극 속 행동을 실제로 체험하고 연구하며, 창조하고 실천하는 연극과가 있다. 이것이 미국 연극 최대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의 ‘커뮤니티 시어터(Community Theatre)’ 시스템을 통해 미국 연극의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를 흉내 내지 않고도 독자적인 연극이념을 내세워 독보적인 연극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아울러 포드나 록펠러 재단은 이들 지방 도시의 예술문화 활동에 통 큰 지원을 하기에 부산 연극계처럼 심한 운영난에 허덕이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부러워해야 하는가. 부산에 연극과가 있는 대학은 과연 잘 운영되고 있는가. 희곡작가에게는 그 작품에 알맞은 대우를 해주는가.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연극계를 위해 부산의 기업들의 관심과 지원 또한 절실하다.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예술문화 육성을 위해 대한민국 대기업은 정치계보다 문화예술계로 손을 더 뻗고 눈길을 돌려주기 바란다.
영화 ‘대부’에 나란히 출연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그들도 소박한 연극무대에서 출발해 연기력을 키워 세기의 배우가 되었다. 세계적인 극작가 미국의 유진 오닐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그들도 획일화되기 쉬운 중심을 벗어나 지역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들만의 고유성을 획득했다는 점도 기억하자. 부산다운 연극이 다시 피어나길 염원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