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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지금이야말로 꽃의 향기가 필요할 때 /차영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3 19:45:0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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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잘 도착했어요. 제가 소중하게 잘 들고 와서 작은 꽃병에 꽂아뒀어요. 꽃향기가 너무 좋아요.”

국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확산 소식에 세상이 들썩일 때였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가는 8살 조카의 손에 매화꽃을 쥐어 주며 “꽃향기가 너를 지켜 줄 거야” 는 말과 함께 “마스크 꼭 하고!” 라고 당부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되었고 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서둘러 사진만 찍고 흩어졌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에워싼 채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흑사병이 나돌았던 중세시대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사람들은 허브류의 약용식물들이 공기 중의 세균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허브 잎과 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로즈마리와 라벤더·카모마일과 같은 허브 잎과 향이 고운 꽃을 몸에 지니거나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어떻게 병에 걸리게 되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최선이었다.

흑사병을 치료하던 의사들도 새의 머리 모양을 한 가죽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부리처럼 생긴 길쭉한 부분에 허브류의 식물을 넣어 두었다. 식물의 힘에 의지한 것만 제외하면 어찌나 요즘 방호복의 모양과 비슷한지 놀랍기만 하다.

14세기 중엽 유럽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1665년 다시 영국 런던을 휩쓸며 또 한 차례 비극을 낳는다. 그때도 사람들은 꽃의 힘을 믿으며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손에 쥐고 다니면서 향기를 맡았다. 그 이후 영국에서는 이러한 작은 꽃다발을 ‘노즈게이’라고 불렀다. 꽃을 편리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달린 섬세한 장신구도 만들었다. 꽃향기를 맡는 것이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마음은 유행처럼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허브식물의 잎과 꽃의 향기가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말은 그저 감상적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꽃의 향기는 분명 잠시나마 죽음과 병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었을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꽃을 건네며 축복을 바라고, 불행한 일들로부터 지켜줄 것이라는 마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실제로 꽃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종종 경험하곤 한다. 식물의 줄기를 다듬을 때 손끝에서부터 번지는 향기로움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게 만든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호흡이 지속되는 동안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고 꽃의 말없는 위로와 향기로운 다독임에 힘을 얻어 용기를 내곤 한다.

중국과 홍콩, 베트남에서는 음력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집안을 수선화와 매화로 장식하고 꽃의 향기를 맡으며 복을 빈다. 이 꽃들의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는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코끝으로 전해진 향기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하고 온몸을 휘감아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내 몸에 스며든 것인지 나의 기억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수선화와 매화의 향기는 떠올리기만 해도 나의 정신을 맑게 만들어 준다. 여러 개의 꽃이 차례로 피어나기 때문에 좋은 향기가 꽤 오랫동안 집 안에 머물러서 눈앞에 꽃이 없어도 느낄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는 꽃을 사기 위해 마음 편히 꽃시장에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매화꽃가지를 바라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향기일지 모른다. 나에게 닥칠지 모를 불행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잃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켜나갈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산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아이들 데리고 밖에 나가기도 힘들고 해서 우리 집 매화나무에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언니 덕분에 꽃향기를 맡으니까 그나마 위로가 되더라”고 말했다.

그날 밤, 내 책상 위에 두었던 매화가지의 작은 꽃봉오리가 차례로 모두 열렸다. 나는 향기로운 꽃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한참 꽃향기에 기대어 모든 일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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