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이 돈다. 양파를 잘라 모든 막사에 비치하라. 어느 부대에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왔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양파 때문이다. 역병 때문이다. 양파의 매운 향이 바이러스를 박멸해주기를 바라는 궁여지책이다. 장군의 희망을 담은 양파가 시간을 몇백 년 전 과거로 돌린다.
유럽 인구 삼 분의 일을 앗아간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 비어 있는 귀족과 부자의 집을 턴 겁 없는 도둑들이 잡혔다. 도둑들은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았다. 다들 두려움에 떠는데 어떻게 도둑질할 생각을 했나? 질문에 도둑들은 지니고 있으면 불행이 비켜가는 행운의 식물이라며, 네 가지 식물을 내보였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약초를 역병에 맞서는 상징적 식물로 받아들인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백리향은 노래에서 반복된다.
파슬리는 소화에 도움이 된다. 세이지는 내구력의 상징이다. 로즈마리는 사랑 정절 추억의 상징으로 신부의 머리에 로즈마리를 꽂아준다. 백리향은 용기의 상징으로 중세 기사는 방패에 백리향 문양을 새겼다. 노래는 후렴구 반복을 통해 건강, 인내력, 정절, 불가능한 일에 기꺼이 도전하는 용기를 완전한 사랑의 이상으로 내보인다.
오래전 귀에 익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를 합창곡으로 받아든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노래이다. 스카보로우는 중세 말까지 영국 상인의 중요 교역지였던 영국의 북해 연안 요크셔주에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45일간 시장이 열렸다. 스카보로우 시장은 열리는 기간이 길고 규모가 커서 영국 상인뿐 아니라 대륙 상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어릿광대의 곡예와 마술사의 마술을 비롯하여 각종 볼거리가 많아 마치 여름축제 같았다.
‘스카보로우 페어’는 17세기 음유시인에 의해 다양하게 불렸는데 처음에 마드리갈로 작곡됐다. 마드리갈은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 중심 세속 음악극이다. 오페라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데 형식상 오페라와 비슷하다. ‘마드리갈 스카보로우 페어’ 역시 남녀가 각기 따로 부르는 부분과 함께 부르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헤어진 연인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남자와 여자는 제각기 상대가 수행할 미션의 목록을 내민다. 그러면 다시 연인이 될 것이라고. 남자는 여자에게 노래한다. 바느질 자국과 바늘땀 표시 없이 아마포 셔츠를 만들고, 물이 마른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꽃 핀 적 없는 가시나무에서 셔츠를 말리라고. 여자는 남자에게 노래한다. 일 에이커의 땅을 마련하고, 소금물과 바닷물 사이에 후추 씨앗을 뿌리고, 양의 뿔로 경작하고, 가죽으로 된 낫으로 베어 히스 잡초로 된 끈으로 묶으라고. 그것을 다 하고 나서 아마포 셔츠를 받으러 오라고.
이 목록이 재미있다. 남자의 관심사는 옷이다. 연인이 천의무봉의 옷을 만드는 바느질 솜씨가 있기 바라고, 물이 안 나오는 우물에서 빨래하라는 표면상 모순의 주문을 한다. 여자의 관심사는 먹고사는 일이다. 땅을 마련해 농사를 짓기 바란다. 여자의 주문도 표면상 모순이다. 바닷물에 씨앗을 뿌려서 농사를 지으라니, 양의 뿔로 밭을 갈라니, 거기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어떻게 곡식을 베라는 말인지.
이 모순의 목록은 미션 임파서블, 즉 불가능한 임무이지만 시적 역설이다. 하늘의 별도 달도 따 줄게. 사랑은 불가능한 약속을 하고 기꺼이 그 불가능한 약속에 속아 넘어가 준다. 남자는 집이 초라하고 가난하더라도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여자는 남자가 멋 부릴 생각만 하지 말고 먹고살 궁리도 좀 하기 바란다. 음유시인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덧붙인다. 적어도 시도는 해보라고, 성의를 보이라고.
폴 사이먼은 마드리갈에서 발췌한 가사에 베트남 전쟁 반전 메시지를 더한다. 잊힌 대의명분에 죽음의 명령을 내리는 부조리한 장군을 풍자하고, 희생자가 되는 병사의 죽음으로 전쟁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며, 은빛 눈물에 덮힌 병사의 무덤으로 시대의 슬픔과 아픔을 노래한다.
부디 역병과의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연인들은 지레 포기하지 말고 사랑을 되찾도록 노력하기를.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이므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