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스카보로우 페어(Scarborough Fair) /최정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6 18:58:57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역병이 돈다. 양파를 잘라 모든 막사에 비치하라. 어느 부대에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왔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양파 때문이다. 역병 때문이다. 양파의 매운 향이 바이러스를 박멸해주기를 바라는 궁여지책이다. 장군의 희망을 담은 양파가 시간을 몇백 년 전 과거로 돌린다.

유럽 인구 삼 분의 일을 앗아간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 비어 있는 귀족과 부자의 집을 턴 겁 없는 도둑들이 잡혔다. 도둑들은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았다. 다들 두려움에 떠는데 어떻게 도둑질할 생각을 했나? 질문에 도둑들은 지니고 있으면 불행이 비켜가는 행운의 식물이라며, 네 가지 식물을 내보였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약초를 역병에 맞서는 상징적 식물로 받아들인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백리향은 노래에서 반복된다.

파슬리는 소화에 도움이 된다. 세이지는 내구력의 상징이다. 로즈마리는 사랑 정절 추억의 상징으로 신부의 머리에 로즈마리를 꽂아준다. 백리향은 용기의 상징으로 중세 기사는 방패에 백리향 문양을 새겼다. 노래는 후렴구 반복을 통해 건강, 인내력, 정절, 불가능한 일에 기꺼이 도전하는 용기를 완전한 사랑의 이상으로 내보인다.

오래전 귀에 익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를 합창곡으로 받아든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노래이다. 스카보로우는 중세 말까지 영국 상인의 중요 교역지였던 영국의 북해 연안 요크셔주에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45일간 시장이 열렸다. 스카보로우 시장은 열리는 기간이 길고 규모가 커서 영국 상인뿐 아니라 대륙 상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어릿광대의 곡예와 마술사의 마술을 비롯하여 각종 볼거리가 많아 마치 여름축제 같았다.

‘스카보로우 페어’는 17세기 음유시인에 의해 다양하게 불렸는데 처음에 마드리갈로 작곡됐다. 마드리갈은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 중심 세속 음악극이다. 오페라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데 형식상 오페라와 비슷하다. ‘마드리갈 스카보로우 페어’ 역시 남녀가 각기 따로 부르는 부분과 함께 부르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헤어진 연인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남자와 여자는 제각기 상대가 수행할 미션의 목록을 내민다. 그러면 다시 연인이 될 것이라고. 남자는 여자에게 노래한다. 바느질 자국과 바늘땀 표시 없이 아마포 셔츠를 만들고, 물이 마른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꽃 핀 적 없는 가시나무에서 셔츠를 말리라고. 여자는 남자에게 노래한다. 일 에이커의 땅을 마련하고, 소금물과 바닷물 사이에 후추 씨앗을 뿌리고, 양의 뿔로 경작하고, 가죽으로 된 낫으로 베어 히스 잡초로 된 끈으로 묶으라고. 그것을 다 하고 나서 아마포 셔츠를 받으러 오라고.

이 목록이 재미있다. 남자의 관심사는 옷이다. 연인이 천의무봉의 옷을 만드는 바느질 솜씨가 있기 바라고, 물이 안 나오는 우물에서 빨래하라는 표면상 모순의 주문을 한다. 여자의 관심사는 먹고사는 일이다. 땅을 마련해 농사를 짓기 바란다. 여자의 주문도 표면상 모순이다. 바닷물에 씨앗을 뿌려서 농사를 지으라니, 양의 뿔로 밭을 갈라니, 거기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어떻게 곡식을 베라는 말인지.

이 모순의 목록은 미션 임파서블, 즉 불가능한 임무이지만 시적 역설이다. 하늘의 별도 달도 따 줄게. 사랑은 불가능한 약속을 하고 기꺼이 그 불가능한 약속에 속아 넘어가 준다. 남자는 집이 초라하고 가난하더라도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여자는 남자가 멋 부릴 생각만 하지 말고 먹고살 궁리도 좀 하기 바란다. 음유시인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덧붙인다. 적어도 시도는 해보라고, 성의를 보이라고.

폴 사이먼은 마드리갈에서 발췌한 가사에 베트남 전쟁 반전 메시지를 더한다. 잊힌 대의명분에 죽음의 명령을 내리는 부조리한 장군을 풍자하고, 희생자가 되는 병사의 죽음으로 전쟁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며, 은빛 눈물에 덮힌 병사의 무덤으로 시대의 슬픔과 아픔을 노래한다.

부디 역병과의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연인들은 지레 포기하지 말고 사랑을 되찾도록 노력하기를.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이므로.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일부 지역은 비
  2. 2제주 천지연폭포서 사진 촬영 중 추락…50대 관광객 숨져
  3. 3만남 거부했다고 차에 감금 후 고속도로서 여자친구 때린 60대
  4. 4올해 초과세수 '최소 50조원'…내년 미래대응기금 200조원대
  5. 5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6. 6“죽여버리겠다” 음주운전 출소 나흘만에 신고자 협박한 60대
  7. 7‘서해피격 공무원 월북’ 수사 발표 해경총경, 직위해제 취소소송 승소
  8. 8올해 7개월간 ‘사이버 도박’ 검거 10대 267명…작년 전체보다 많아
  9. 9추석 연휴 마지막날 정체 시작…부산→서울 5시간
  10. 10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 1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2. 2“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신고 3년 새 46배 증가”
  3. 3[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4. 4군·유엔사 ‘DMZ 지뢰 추정 폭발’ 현장 조사 절차 시작
  5. 5조희대 대법원장 '재제청 거부' 여진…여야 공방 계속
  6. 6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7. 7국힘, DMZ 지뢰사고 공세 지속…“증거유실 기다리나”
  8. 8[속보] 이 대통령, 유시민 겨냥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하다 독소조항 삭제 못해"
  9. 9조국 "조희대, 이 대통령 인정 안해" 장동혁 "조희대 탄핵하면 李 탄핵"
  10. 10우크라 “북한군 포로 한국행, 韓과 직접 대화…비밀이송은 이상했을 것”
  1. 1올해 초과세수 '최소 50조원'…내년 미래대응기금 200조원대
  2. 2"미래기금 사업 131건 중 95%는 부처 요구대로…감액 6건 불과"
  3. 3숙박업 세금체납 4년간 3.4배↑…주요 업종 중 최대폭 증가
  4. 4[속보] 박홍근 “호남 반도체, 기업 팔 비틀기 아냐‥인프라도 지원할 것”
  5. 51243회 로또 복권 1등 12명…당첨금 각 25억 9252만 원씩
  6. 6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7. 7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8. 8집세 받는 미성년 집주인?…올해 20세 미만이 산 주택 115건
  9. 9세금 안 낸 '억대 유튜버' 작년만 총 17명…당국, 239억원 추징
  10. 10[차호중의 재테크 칼럼] 통화량과 물가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일부 지역은 비
  2. 2제주 천지연폭포서 사진 촬영 중 추락…50대 관광객 숨져
  3. 3만남 거부했다고 차에 감금 후 고속도로서 여자친구 때린 60대
  4. 4“죽여버리겠다” 음주운전 출소 나흘만에 신고자 협박한 60대
  5. 5‘서해피격 공무원 월북’ 수사 발표 해경총경, 직위해제 취소소송 승소
  6. 6올해 7개월간 ‘사이버 도박’ 검거 10대 267명…작년 전체보다 많아
  7. 7추석 연휴 마지막날 정체 시작…부산→서울 5시간
  8. 8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9. 9비 와도 ‘부캉이’ 보러 북항 북적…추석 연휴 23만명 몰려
  10. 10[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1. 1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2. 2[속보] 한국,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첫 금메달
  3. 3남자 사브르, 일본에 45-44 역전승…아시안게임 단체전 4연패
  4. 4한국 남자핸드볼, 중국 꺾고 8년 만에 아시안게임 4강
  5. 5한국 야구, 중국 꺾고 결승 진출…27일 일본과 금메달 결정전
  6. 6[속보] 여자농구, 일본 꺾고 12년 만에 금메달…남녀 동반 우승
  7. 7[속보] ‘평균대 유망주’ 황서현,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금메달
  8. 8한국 여자 축구, 우즈벡에 6-3 승리로 준결승행
  9. 9류지현호, 일본에 0-5 영봉패
  10. 10이민성호, 베트남 4-0 완파하고 준결승 진출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인간만의 영역 ‘관광과 과학’의 결합
국제칼럼 [전체보기]
추석 밥상에 오를 이재명 정부의 성적표
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더라면
기고 [전체보기]
존엄 보장하는 부산형 청년보장제 되기를
복합재난에 강한 도시의 조건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작자 미상
범숙학교의 기적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아이의 근시, 안경만 쓰면 끝?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부산대·부산교대 통합, 구체적 로드맵부터 마련하라
동남권 건강지표 ‘빨간불’…촘촘한 의료 안전망 구축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지방시대위’ 부산 이전, 다시 뛰는 대한민국
니트 세대와 한국 노동시장의 불편한 현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6·3 부산시장 선거, 부동산 정책의 길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공정함이 만드는 브랜드 가치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청년·노인 예산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