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명이나 디자인뿐 아니라 색깔도 상표로 등록돼 보호를 받는다. 미국 3M사 포스트잇의 노란색, 패션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의 하이힐 밑창 빨간색, 보석브랜드 티파니의 티파니블루 포장지색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4년 전 모 식품회사가 과자봉지에 사용한 금색을 색깔상표 1호로 등록했다. 그렇다고 모든 색이 상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색깔만으로 특정 제품을 떠올릴 수 있는지, 다른 제품과의 자유경쟁을 해칠 위험은 없는지, 그 상품에 꼭 필요한 요소인지가 엄밀히 고려된다. 많은 기업이 배타적 특권을 인정받기 위해 색깔상표 등록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중도우파인 공화당의 상징색은 빨강, 중도좌파인 민주당은 파랑이다. 영국 등 유럽에선 보수가 파랑, 진보가 빨강인 것과 반대다. 미국 정당색이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NBC 방송이 1976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와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가 맞붙은 39대 대선을 보도할 당시엔 오히려 민주당을 빨강, 공화당을 파랑으로 표시했다. 지금의 색은 43대 대선 때인 2000년 신문 방송이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의 우세지역을 그래픽 처리하면서 공화는 빨강, 민주는 파랑을 쓴 게 시초라고 한다. 어쨌든 미국은 정당 상징색을 정당 자신이 아닌 언론에서 정해줬다는 게 특이하다.
‘핑크’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색깔이다. 17세기 옥스퍼드 사전에 옅은 빨간색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한다. 지금은 여성의 색깔로 통용되지만 19세기까진 남자 어린이의 색이었다. 1893년 뉴욕타임스 기사에 “남자애는 핑크, 여자애는 파란색 옷을 입혀야 한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다.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이 중도 보수를 지향하며 합친 미래통합당의 상징색이 ‘밀레니얼 핑크’로 정해졌다. 파스텔톤의 연한 붉은 색으로 몇 년 전부터 패션계에도 유행했다. 빨강의 극단적인 이미지를 벗고, 보수 지지세가 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20, 30대 밀레니얼세대(1980~2000년 출생자)에게 어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파랑, 바른미래당은 민트, 대안신당은 진녹색, 정의당은 노랑, 민주평화당은 연녹색이 상징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창당 준비 중인 국민의당이 상징색을 주황으로 정하자 이 색을 써온 민중당이 반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당의 필요에 따라 상징색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다만 기회주의적 정치인이 흔한 우리 풍토에서 회색을 내세우는 정당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