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만 해도 보수정당 통합이 과연 성사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지분을 조정하기 어려워서다. 그 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한 정리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의 이름난 논객은 신년 대토론회에서 보수통합은 절대 안 될 거라고 단정짓듯이 밝혔다. 자유한국당이 시간을 놓쳤고, 황교안 당 대표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알다시피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보수통합신당인 미래통합당이 지난 17일 공식 출범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미래를 향한 전진4.0 등의 보수정치세력이 하나로 뭉쳤다. 이로써 한국당은 2017년 2월 새누리당에서 당명을 변경한 뒤 3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탄핵 사태로 분열된 보수세력을 합쳐서 정권 견제의 전열을 정비하고, 나름 보수 재건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모두를 아우르지 못한 소통합이란 건 접어두더라도, 철저한 자기 반성과 뼈를 깎는 혁신을 보여주지 못해서다. 신당의 새로운 가치와 비전은 빠진 채 4·15총선 승리를 위한 단일세력 구축에만 매몰됐다는 인상이 짙다. 당 지도부 구성이 그 척도다. 일부 다른 정파 인사를 제외하고 종전 한국당 최고위원과 새누리당 출신이 거의 다 차지한 모양새다. 총선 공천관리위원회도 기존 체제가 유지됐다. 그러니 첫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으로의 흡수통합임을 풍기는 장면과 그에 반발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공천논쟁이 빚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정당 변천사는 이번 통합을 비롯해 이합집산으로 점철돼 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수많은 정당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합쳐졌다가 쪼개졌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당 이름만 바꾼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같은 정치철학과 이념을 공유해서가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선거전략 위주로 정당지형이 재편돼왔기 때문이다. 영혼 없고 대의명분 없는 합당과 분당이 판을 쳤다는 얘기다.
그간 숱한 정당이 명멸하고 이합집산하다 보니, 그들 이름조차 헷갈린다. 하기야 박정희 군부정권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로만 따져도, 지금까지 주요 정당 수가 60개에 이른다. 1년에 하나씩인 셈이다. 과거 민주당 계열도 숱하게 흩어지고 합쳤다. 그렇다 보니 여야 정치인들의 당적 변경 또한 다반사로 일어났다. ‘불사조’로 불린 이인제 전 의원은 무려 14차례 당적을 변경했고, 미래통합당의 어느 의원은 지난 4년간 몸담았던 정당 수가 5개나 된다.
정당이 제대로 되려면 ‘3C’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콘셉트, 콘텐츠, 채널의 영어 두문자다. 즉 지향하는 가치, 구체적인 정책,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할 통로를 뜻한다. 그것보다 선거·정치공학에 따라 통합한 대표적 사례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다. 이들이 합친 게 민주자유당인데, 2년 뒤 14대 총선에서 합당의 효과는커녕 참패하고 말았다. 총선 전 218석에서 69석을 잃으며 과반 확보에 실패한 거다.
‘한국 현대사 산책-1990년대편’(강준만·2006년)에서 3당 합당은 ‘분열을 내장한 통합’으로 적혔다. ‘당시 민주계(김영삼계) 인사들에게는 3당 합당이 의리 혹은 동지애의 게임이었지, 그 어떤 명분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표현에 그 이유가 담겼다. 이질적인 세력이 필요에 따라 모였다가 단물이 다 빠진 뒤로는 뿔뿔이 흩어졌으니,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3당 합당의 그림자가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드리워진 듯하다. 주축 세력에 의해 ‘구국적 결단’ ‘혁명적 신사고’로 포장됐지만 3당 합당 이후 우리 정치판에는 유권자의 결정과 무관한 이합집산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총선 비례의석만을 노린 위성정당마저 급조되는 지경이다.
이제 총선이 50일 남짓 남았다. 이번만큼 변수가 많은 선거도 드물지 싶다. 따라서 예측하기 어렵고, 중도층 민심이 어떻게 요동칠지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임기 절반에 치르는 선거라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는 게 맞지만, 야당 심판론도 만만찮다. 보수진영은 덩치를 키웠지만 ‘도로 새누리당’의 틀을 깨는 게 관건이고, 민주당은 오만과 독선의 진영논리에만 갇혀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보수진영이 통합을 이룬 것은 선거구도 면에서 유리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정부 여당의 검찰인사 논란,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등으로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한두 달 사이에도 확 바뀌는 게 표심이다. 지금부터라도 처절할 정도의 자기 쇄신과 개혁 공천, 미래 비전 제시, 기득권 내려놓기, 구태정치 타파 등의 달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과거 3당 합당의 전철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