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영 마땅찮은 모양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이어 라스베이거스 유세에서 연거푸 이 영화를 걸고 넘어졌다. 앞서 “한국과 무역문제가 엄연한데 웬 작품상”이라며 꼬투리를 잡더니 라스베이거스에선 ‘빌어먹을(freaking) 영화’라고 수위를 높였다.
서부에서 재선을 위한 유세를 진행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두고 야박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미 무역 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고 주한 미군에 필요한 비용을 더 많이 한국으로부터 받아내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자 한껏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 나라가 시퍼렇게 질려 있는 동맹국의 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오직 ‘미국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나는 백악관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화가 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수 겸 배우 베트 미들러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뉴스 전문 방송사 CNN은 “트럼프의 발언은 반미국적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용광로이고, 언론의 자유와 다양한 관점을 장려한다”며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기생충’은 갑부들이 서민계층의 투쟁을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영화로, 두 시간 동안 자막을 읽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는 그것을 싫어한다”고 꼬집었다.
그나마 식을 줄 모르는 ‘기생충’의 흥행 열기는 위안거리다. 북미 시장에서 외국어 영화 흥행 4위(4541만 달러)로 ‘와호장룡’(1억2810만 달러), ‘인생은 아름다워’(5720만 달러), ‘영웅’(5370만 달러)을 뒤쫓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스타일.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남긴 “난 한 놈만 패”라는 대사처럼 그가 같은 레퍼토리 반복을 즐긴다는 점이다. ‘기생충’을 단골 메뉴로 우리나라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미 그는 중국 러시아와 함께 우리나라와 북한을 꼭 집어 “상대해야 할 나라”라며 목청을 높였다. 영화 ‘기생충’의 작품성이나 대중성에는 아랑곳없이 이를 대선에서 지지층을 응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니 스스로 ‘1인치의 벽’에 갇힌 셈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다음 달 말까지 타결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 안보가 약화하는 위기가 형성되는 국면이라는 진단이 미국에서 나왔다. 허투루 내뱉는 말폭탄이 아니라서 더 큰 문제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