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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생명가치와 시장가치 /유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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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2-23 19:32:0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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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어난 것은 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죽기 위해서일까? 팩트로 보면 인간을 포함해 죽지 않은 생명체가 없으니 정말 우문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명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은 죽음에서 최고의 공포를 느낀다. 인간의 대응방식 한 가지는 죽음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예컨대 질병, 자연재난, 굶주림, 산업재해, 교통사고, 환경오염, 전쟁 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다른 하나는 죽음의 필연성, 즉 생명의 ‘일회적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다 같이 좀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내’가 살기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거나 그것을 조장하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 또는 그러한 행위를 거부해오고 있다. 즉 인간의 생명가치는 어떤 명분으로도 제거될 수 없는 최고 가치로 인류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못한 존재로서 갖는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 탓에 생존의 위험요인을 완벽히 제거하는 방안이나 모두 같이 잘 사는 완전한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누가 그 위험요인들을 떠맡을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재화가치의 서열을 매겨 누가 그것을 얼마만큼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 정해주어야 한다(이를 자원배분문제라 하자). 그러면 그 기준에 따라 누군가, 그 위험요인을 감당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 다른 사람은 덜 위험한 상태에서 더 나은 삶을 모색하면서 사회는 유지된다.

자본주의는 군주나 귀족 그룹과 같은 ‘인간’이 자원배분 기준을 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수많은 보통 사람이 자율로 참여해 시장을 형성하고, 시장은 경쟁원리에 따라 교환가치(가격)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시장기구는 그 가격을 기준 삼아 교환을 통해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과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지불 능력 없는 소비자나 비용이 더 높은 생산자를 도태시키기도 한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요인을 줄이려면, 예컨대 안전을 위해 현재의 비용은 늘어나야 한다. 비용이 오를 때,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한 관련 재화 생산자는 결국 도산한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위험은 감수하려 한다. 소비자는 안전 관련 재화 가격이 상승하면 구입을 포기하고 운에 맡겨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인간을 위험으로 내모는 ‘시장의 역설’이다.

이런 이유로 광업 제조업 건설업 등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업종에서 산업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 업종 종사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로 사고가 나면 중증 외상을 입기에 종합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여력이 없다. 최근 이러한 산업재해에 따른 사고사망자 수와 업무상 질병사망자 수가 9만 명 안팎을 유지한다. 즉 시장은 이익이 되는 생명은 살려내지만 이익이 안 되는 생명은 방치한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은 온전할까?

‘기생충’이 답을 잘 묘사했다. 시장이 사람을 지하·반지하·지상 세계로 차별화하고 아래 세상 사람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밀어붙였을 때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세계가 열광한 것은 선악 문제가 아닌, 이미 보편성을 띤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 공감한 것 아닐까?

이런 구조적 한계 속에서 우리 사회는 생명의 가치를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둘까? 생명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진국형 외상센터’를 꿈꾸던 한 의사가 좌절했다. 이국종 박사 이야기이다. 적자 등 시장논리를 앞세운 병원 측과 의료계 반발, 헬기 등의 소음에 따른 민원,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에 절망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생명가치보다 시장(교환)가치를 우선시한다는 중요한 사례일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공포를 넘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사회의 위험을 줄이고 이것을 담당하는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시장 밖 체계’를 정립해야 할 때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대사가 낭만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이 언제일까? “어떤 위치에 있던 사람이든 수술 방에 들어온 이상 나한테 환자일 뿐이다. 다른 잡생각 안 한다. 머리에 딱 하나만 꽂고 간다.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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