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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생충’의 경제학 /한성안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25 19:19:3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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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경제가 문제없이 작동된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가 제법 많다. 우리가 대학 강단에서 쉽게 만나는 ‘주류경제학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만드는 활동, 곧 ‘생산’만으로 경제가 끝나지 않는다. 생산이 분배와 소비로 이어져야 경제활동은 비로소 완결된다.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다. 앞의 주류경제학자들은 기업가의 분투만 조명하지만 현실에서는 하나의 제품이 출시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 안다. 그러나 기술자와 설계자, 디자이너가 없으면 생산이 시작되지 못한다. 자금을 관리하는 재무인력과 판매를 맡는 마케팅부서도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한다. 그뿐 아니다. 2만5000여 개 부품을 공급하는 하도급업체의 노력이 없으면 완성차는 조립될 수 없다. 하나의 제품이 최종적으로 생산되기 위해 이처럼 많은 사람의 참여와 노고가 필요하다. 주류경제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생산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친 후 참여자 모두는 날렵하게 빠진 자동차를 목전에 두고 기뻐할 수 있다. 아, 우리 노력이 이렇게 다시 태어나다니! 주류경제학은 또 여기까지만 주목한다. 경제가 제작, 곧 생산에서 마무리되면 모두가 이처럼 행복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참여한 여러 사람에게 ‘분배’될 차례가 기다린다. 현실에서 자주 확인되듯 노동자는 박봉에 시달리는 대신 최고경영자는 수십 억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분배된다. 부품업자의 도급단가를 후려치거나 디자이너와 설계자의 ‘암묵적’ 지식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멋진 자동차를 아무리 많이 만들더라도 결과가 이처럼 불공정하게 분배되면 생산에 참여한 자들은 궁핍에 시달리거나 다음번 생산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산에 다시 참여하겠지만, 시간 때우며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디자인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불량률은 높아진다. 왜곡된 분배는 ‘소비’에도 반영된다. 그것은 소비의 불균형을 유발한다. 적게 분배받은 사람들은 평균적 삶에 못 미치게 소비함으로써 행복감이 현저히 줄겠지만 많이 분배받은 사람의 소비는 늘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걸로 끝나면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소비의 불평등은 행복에 대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물질적’ 결과를 낳는다. 무슨 말인가? 많이 분배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확실히 더 소비하지만, 분배받은 전부를 소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밥을 세끼 이상 먹을 수 없고, 2인분 먹던 엘에이갈비를 5인분이나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쓰고 남은 돈을 저축이라 부르지만 이는 사실 쓰이지 않은 채로 노는 돈이다. 기업의 저축을 보통 ‘사내유보금’이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저축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이 돈은 경제의 정상적 흐름에서 ‘누수’됨으로써 물질 규모를 축소시킨다. 이는 역설적으로 경제성장에 대해 악덕이 된다. 저축은 불공정한 분배 그리고 여기서 출발한 불평등의 결과다. 경제는 생산, 분배,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성장·발전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경제활동이 조화를 이룬다는 보장이 없다. 조화를 깨는 고리는 어디 존재하는가? 앞에서 본대로 바로 왜곡된 분배과정에 그 원인이 있다. 주류경제학이 놓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해 버린 과정이다.

영화 ‘기생충’ 덕분에 온 나라가 즐거웠다. 우리 모두는 봉준호와 송강호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기생충’은 감독과 주연배우만으로 제작되지 않았다. 조연배우 작가 번역가 미술인 음악인과 스태프는 물론 다수의 단역배우가 온 힘을 다했다. 우리는 ‘기생충’이라는 완성품 뒤에 가려진 이들의 노고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기생충’은 ‘모든 이’의 산물이다.

봉준호 감독은 모든 스태프와 단역배우를 공정하게 대했다고 한다. ‘기생충’의 성공은 봉준호의 이런 경제학 때문인지 모른다. 다음 작품도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생산과정에서 기업가의 노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제학, 나아가 경제를 생산에만 국한한 나머지 분배와 소비를 연구하지 않는 경제학, 더 나아가 분배의 불공정성에 주목하지 않는 경제학을 이제 극복할 때다. 기생충에서 경제학을 배우자!

영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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