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오르는 듯하던 4·15총선 열기가 코로나19의 무서운 기세에 눌린 형국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총선 연기론마저 나온다.
초유의 불투명한 ‘정치 일정’ 속에서도 여야 정치권의 기선 제압을 위한 ‘프레임(구도) 전쟁’은 더 치열하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16년 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설파한 프레임의 중요성은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시계를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로 돌려보자. 전임 정권의 탄핵으로 들어선 문 정부는 국민의 지지 속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만들기에 돌입했다. 나라의 틀을 바꾼다고 할 정도로 국방 외교 경제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파격적인 정책을 폈다. 일부에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속도감 있게 진행된 문 정권의 핵심 정책 추진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이들 정책은 어떻게 됐나.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제재 완화가 주된 내용인 이른바 한반도 평화구상은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북한은 한동안 중단했던 도발을 이어가고, 미국 역시 강경한 자세를 유지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에 도발할 시간만 벌어주고, 한미 동맹만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다시 대결구도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논리로 맞선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전면적인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보자.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 향상을 통한 계층 간 차이 해소라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더 많다는 반대 측 지적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리한 경제 지표를 인용하며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한다. 역시 평행선을 달린다. 대폭 늘어난 현금성 복지 정책을 두고도 일부에서는 퍼주기 아니냐고 하지만 집권당은 취약계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일축한다.
주요 사안을 두고 형성된 이런 프레임은 소모적인 논쟁과 함께 진보와 보수 진영 간 분열과 반목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러는 사이 정부와 여당은 문 대통령 개인의 비교적 높은 지지도와 열성 지지세력을 우군 삼아 애초의 정책을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보수 야당의 목소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수구·꼰대 이미지에 갇혀 지리멸렬하다시피 한 보수 야당도 한몫했다. 술자리에서 정치가 화제가 되면 으레 정부 정책을 비판하던 사람마저도 결론은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을 지지할 수 없지 않으냐”였다.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프레임에 변화가 예상된 지점은 ‘조국 사태’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식 불법과 편법이 드러나면서 정부·여당이 수세에 몰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여당은 이를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진영 대결 프레임으로 만들어버렸다. 조 전 장관이 중도하차하긴 했지만 이런 프레임은 이어졌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 중심부를 수사하던 검찰 지휘부를 해체한 것을 두고 사법 방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여당은 ‘오만한 검찰을 손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정권심판론에 맞서 야당심판론도 등장했다. 하루아침에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고, 공포심에 입맛까지 빼앗아 간 코로나19가 총선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야당에서는 정권의 중국 눈치 보기가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정부·여당은 경제와 외교 등 모든 문제를 고려해 대처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민주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합법적이고도 명확한 방법은 투표다. 강력한 여당에 맞서 보수 야권도 비록 불완전한 결합이지만 미래통합당으로 간판을 바꿔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 논란의 중심이 된 사안에 대해 표로써 말할 것이다. 투표 결과에 따라 정부·여당과 야당 중 한쪽은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극한 대립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총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