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를 묻는 안부가 미안하고 불안한 세월입니다. 부산 울산 경남에 최근 ‘코로나19(COVID-19)’ 확진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더더욱 그러합니다. 베이비부머인 우리 세대는 1967년 콜레라를 시작으로 ‘신종인플루엔자’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 크고 작은 전염병의 시간을 잘 지나왔는데도, 코로나19 앞에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발병이 되면 치명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흔한 비유로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하자고 찾아오는 것은 병이고, 늘어나는 것은 약이더라는 선배들의 말처럼 기저질환, 즉 지병 하나 이상쯤은 가지고 사는 베이비부머에게 코로나19는 감염되면 실로 위험한 전염병입니다. 일자리에서 밀려나서 스스로 인생에서 자가 격리되는 현실에, 코로나19에 의해 또 다른 자가 격리가 되는 현실이 겹칩니다.
이동순 시인의 부친께서 노년의 일기장에 썼다는 ‘종일본가(終日本家)’라는 말이 새삼 사무칩니다. 그렇다고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움직여야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고, 비누로 손 씻기는 예절입니다. 지인을 마주쳐도 악수대신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웃으며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코로나19가 14세기 중세를 휩쓴 전염병 ‘흑사병’과 유사해지고 있어 두렵습니다. 흑사병과 코로나19는 같은 비극의 스토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전염병은 모두 중국이 첫 발생지라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지역을 휩쓸고 흑해와 크림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착륙,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흑사병으로 1347~1351년 약 3년 동안 20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지금 코로나19도 중국에서 시작돼 아시아를 지나 유럽과 남미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남극 빼고 다 점령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1년 안에 전 세계 인구의 최대 70%를 감염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바짝 긴장이 됩니다.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전염병학 교수는 1년간 전 세계 인구의 4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지구 인구가 77억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중 50%가 감염된다면 38억 명이 감염되는 인류 사상 최고의 ‘판데믹(pandemic)’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집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과학과 지혜가 이 위기를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변해야 합니다. 특정 종교가 정직해야 합니다. 행정이 강해져야 합니다. 입으로 하는 정치가 바르게 가야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특정인들을 법으로 엄중 처벌해야 합니다. 하나 누구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역사회 감염원이 되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해야 합니다.
개학을 앞두고 있는 초중고와 대학은 아차하면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교육당국은 개학 전에도, 개학 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현실에 불안하기보다 생각을 바꾸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알을 깨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요. 역사 이후 처음 겪는, 미증유의 전염병 사태에서 우리가 가진 반만년 나침반의 자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침이면 해는 뜨고 봄이 오고 꽃이 핍니다. 바야흐로 자가 격리의 창밖엔 이미 봄이 와있습니다. 여전히 밤하늘엔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고려 말 유신(遺臣)들이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두문동(杜門洞)’이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유신 72인이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조복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들어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문동 정신’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정의는 잠시 잊고, 잠시 두문불출의 즐거움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서둘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둠이 깊으면 반드시 새벽이 올 것이라 믿으며, 그 새벽까지 내내 건강하시길!
시인·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