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성격이 까칠해 친구가 드물었다고 한다. 식당에 혼자 가서 2인분을 주문하는 게 대표적 일화다. 이유인즉 자기 앞자리에 아무도 앉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저서를 출간했지만 오랜 기간 거의 무명으로 지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지 싶다. 그러다 63세에 펴낸 ‘소논문과 보충논문집’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그 책 속에서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목이 고슴도치 우화다.
내용은 이렇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여러 마리가 온기를 나누려고 모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고 아파서 결국 멀어졌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는 이들을 다시 가깝게 모이도록 만들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고슴도치는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적정거리를 찾게 된다. 즉 가시가 없는 머리 쪽으로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추위와 고통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을 심리학 용어로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인간관계에서 이 용어는 서로 친밀함을 바라는 것과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그의 집단심리학에서 이를 인용한 이래 심리학 영역으로 인정되었다. 현대사회의 ‘관태기’도 같은 맥락일 터다.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권태를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사람이 많은 모임과 단체생활 등을 피하는 행동이 잦은 경우에 쓰인다.
요즈음 ‘코로나19’ 확산 탓에 고슴도치의 딜레마처럼 타인과의 거리두기가 최대 화두다. 그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 유행 방지를 위해서는 이달 초까지가 중요 시점인 만큼 개인위생수칙 준수와 아울러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거듭 강조했다. 대책본부가 밝힌 그 적정거리는 2m다. 사람이 기침하거나 말을 할 때 침방울이 튀는 거리다. 그 정도 떨어져 있으면, 바이러스가 침입할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도 같은 권고문을 냈다. 자녀들의 개학이 연기된 3월 첫 주에는 마치 큰 비나 눈이 오는 날처럼,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달라는 제안이다.
고슴도치들이 찾은 적정거리를 인간 사회에 비유하면, 서로에게 지켜야 할 예의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체적인 거리일뿐 마음까지 멀어져서는 곤란하다. 힘들수록 사회적 온정과 배려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야 하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