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꿈을 꾸었다. 어지간해서는 꿈을 잘 안 꾸는데 어찌 하필 꾼 꿈이 또 군대다. 누군가는 꿈을 안 꾸는 게 아니라 기억을 못 할 뿐이라던데 그래도 좋다. 왜 군대 꿈은 기억하느냐 이거다.
내가 20대 초반에 군대 생활을 했으니 이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다 돌고도 덤으로 사는 마당임에 어지간해서는 삭혀버릴 만도 한데 여전히 군대 꿈으로 시달린다는 사실에 부아가 난다. 내가 쪼잔해서 그런가? 내가 꾸는 군대 꿈은 그들이 말하는 전우애로 가슴이 벅차 엔도르핀이 분출되거나 서로 아끼고 도우며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며 맞는 뿌듯한 감정 따위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저 억울하고 얻어터지고 분노 속에 굴복당하는 막장 드라마이고 아주 불쾌한 악몽의 연속이다. 내가 왜 이런 더러운 꿈으로 지금껏 시달려야 하냔 말이다.
분명 제대했는데 그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고 늙은 나더러 다시 군대 생활을 하라고 몇 번씩 잡아가거나 뿌연 안개 속에서 집단으로 얻어터지고 정강뼈며 허벅지를 군홧발로 걷어차이는 꿈이다. 심지어 ‘구타 금지’ 간판 밑에서 야비한 놈들로부터 곡괭이 자루로 두들겨 맞는다. 이걸 시리즈로 꾼다.
아버지는 나더러 사내는 군에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말한 인간은 계급으로 가르는 자신의 위치를 잽싸게 알아채고 비굴하건 말건 자동으로 길 줄 알며 어떤 불편함도 어떤 부당함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동물이었다. 맹탕 부려먹기 좋은 그런 인간을 원했다. 군대에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종이 구기듯 스스로 짓구기지 않았으면 나 역시 의문사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간부들은 졸병들끼리 두들겨 패고 짓밟으며 이른바 군기라는 괴물을 곧추세우길 원했다. 그래야 부리기 편하니까.
나는 졸병으로서만 군대 생활을 해서 그 귀하신 장군들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모른다. 그것도 당연히 군사기밀일 거다. 군사비밀이라는 장막을 치고 뒤에서 뭘 하는지는 그들만 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들은 칼을 빼 들고 앞장서 나가 삼 합으로 끝을 내건 오십 합 넘게 싸우건 목숨 걸고 솔선수범했고, 나는 이게 진정한 장군의 면모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군에서 경험한 장군은 오히려 군 전력을 갉아먹는 적군이었다. 없던 장군이 온다고 하면 바람 부는 날 낙엽은 계속 떨어지는데 종일 싸리비질이나 하고 연탄을 으깨어 물에 타 구둣솔로 막사에 칠이나 하곤 했다. 이게 국방에 무슨 보탬이 되었는지 여태껏 나는 모른다.
그런 기개의 장군이 모여서 기껏 하는 주장이 “미군이 철수하면 나라가 망한다”이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게 어디 온전한 국가인가? 군인 이전에 먼저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할 줄 아는 게 기본이다. “내 지나간 일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노라.” 이것이 바로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라 했다. 420년도 더 지난 오늘에 조금도 나아진 점 없는 것 같아 부끄럽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건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멀리 초한지나 삼국사기, 또 가까이 대한제국 역사를 봐도 외국 군대에 의존하는 나라의 종말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다음 중 연대순으로 옳게 나열된 것은?’ 이런 허접한 문제의 답을 외우는 수험용 공부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성찰하고 비추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진정한 역사 공부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군대의 장군이라면 이참에 대폭 줄여야 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 요즘 전쟁은 떼거리로 싸우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장난 같은 고도의 컴퓨터 게임이다. 최고의 대우로 최고 기능인을 양성하자. 비격진천뢰, 천자총통, 대신기전, 산화신기전을 만든 분들의 후손 아닌가. 무엇이 두려운가.
재차 밝힌다. 내가 아는 역사에서 자신의 나라를 외국 군대에 의존한 국가는 머잖아 멸망했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