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다. 보통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다.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나고난 뒤 안다. 그것이 기회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개인의 위기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줄 리더십 말이다.
개인적으로 30대 중반에 맞이한 1997년 외환위기는 무한 경쟁이란 신자유주의의 매서운 맛을 몸으로 겪게 했다. 자유가 곧 민주는 아니었다.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은 나약했다. 몸뚱어리 하나로 살아가는 월급쟁이의 원초적 한계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탓이다. 정리해고의 칼바람 앞에 현실 부적응은 곧 사회적 낙오였다. 그때는 실직에 대비한 사회안전망도 부실했다. 자기 몸뚱어리는 자기가 챙겨야만 했다.
물론 사회적 불합리를 개선할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속성장이 만든 우리 사회의 그늘도 많았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안전망이 없으면 구조조정은 늘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위기는 있는 자의 기회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살아남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삶의 자세도 바뀌었다. 적어도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외환위기란 값비싼 대가로 치르면서 깨달은 교훈이다.
코로나19가 외환위기의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사태 초기 경제적 위기를 운운할 때 설마 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겠지 했다. 하지만 주요 제조업의 연쇄 ‘셧다운(공장 폐쇄)’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불안감이 든다. 국내 자동차·전자업계 공장 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라인을 세웠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말이 아니다. 시민이 외출하지 않으니 매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출 지표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2월 하루 평균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11.7%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이니 불안감은 위기감으로 변한다. 혹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사회 전체로 몰아치지나 않을까 해서다. 생산 라인이 멈추고 줄어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외환위기 때처럼 몸으로 때울 수는 없지 않은가.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사태 종결 후 경제적인 여파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게 국가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