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쏴라(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무함마드 알리가 한 말이다. 미국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1999년 12월 3일 자에서 알리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로 선정했다.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였다. 프로로 전향해 1964년 2월 25일 WBA·WBC 헤비급 통합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꺾고 챔피언이 됐다. 경기 전 도박사들은 7 대 1로 리스턴의 승리를 예상했다. 1974년 10월 30일 알리는 조지 포먼과 대결한다. 포먼은 조 프레이저를 꺾고 세계챔피언이 돼 있었다. 그냥 챔피언이 아니었다. 압도적 챔피언이었다. 40승 37KO의 전적이 그것을 말해줬다.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경기는 포먼의 일방적 우세였다. 8회에 이변이 일어난다. 종료 13초를 남기고 알리는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포먼을 KO시켰다. 뒷날 ‘킨샤샤의 기적’으로 명명된 기적이다. 분석해 보면, 8회 KO 직전까지 포먼의 일방적 우세로 보였지만 그것이 알리의 작전임을 알 수 있다. 로프에 기대 본인은 힘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포먼이 무리한 공격을 계속하게 해 체력을 고갈시켜 나갔다. 포먼은 유효타가 거의 없었다. 포먼의 힘이 빠지고 약점이 노출되자 승기를 놓치지 않고, 끝내버렸다. 권투가 예술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 경기였다.
알리의 위대함은 경기력에 국한되지 않았다. 주지하듯 무함마드 알리는 본명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케시어스 클레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무함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베트남전쟁으로 징집 대상이 됐을 때 징집을 거부했다. 그 탓에 체포돼 병역회피로 징역 5년 유죄판결을 받고 챔피언도 박탈당했다. 알리는 법정투쟁을 벌였다. 1971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약 4년 동안 시합을 못 했다. 전성기를 법정투쟁으로 허비한 것이다. 포먼과의 경기는 알리의 전성기가 지난 뒤 벌어진 일이다.
종교 신념을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고, 국가 법률과 정책에 대항한 행위를 들어 알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알리는 쉬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주류에 영합해 영달을 추구할 수 있었다. 알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경과 비난을 온몸으로 맞으며 저항했고 끝내 신념을 관철시켰다. 인종적·종교적 소수 처지에서 다수의 편견과 오만, 그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맞섰다. 미국 사회가 흑백 평등, 종교적 관용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다. 알리의 위대함은 스포츠 스타로서 인기를 사회 발전 계기로 삼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이 뒤숭숭하다. 언론은 코로나19에 관한 보도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도를 내보낸다. 그리하여 갈수록 위기감이 증폭되는 느낌이다. 국민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위기에 무감각하면 안 된다. 경고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심리적·정서적 동기가 그것이다.
그 심리·정서적 동기는 다양하다. 정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종교집단마다 다르다. 본인이 확진자가 됐는지 가족 친지 중 확진자가 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러한 심리·정서적 동기는 반드시 합리성, 자유·평등·박애 등 인류보편 가치, 종교적 관용에 의해 제어되고 순화돼야 한다. 질병 때문에 타인을 혐오해서도 안 된다.
국제신문은 지난달 12일 자 ‘세상읽기’에 황경민 작가의 ‘절망하지 않는 것이 병이다’는 칼럼을 실었다. 어제의 혐오 발화자가 오늘의 혐오 대상자가 되고, 오늘의 혐오 대상자가 내일의 혐오 발화자가 된다. 황 작가의 언급은 사태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혐오하지 않아야 한다. 혐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감과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다. 알리가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이제는 다른 이들의 선함을 믿는다(I believed in myself, and I believe in the goodness of others).” 생각해 본다. 위기 극복 때까지 나와 타인의 선함을 믿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어떨까.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리는 것이 어떨까.
변호사·법무법인 청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