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8년 파리대학 의학부는 프랑스 왕 필립의 하명을 받고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유럽 전역에 번져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던 페스트의 원인과 치료·예방법이었다. 원인이라고 제시한 게 천체의 영향, 기후 불순, 지진, 공기 부패로 인한 혈액 악영향 같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이었으니 제대로 된 치료·예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고, 흉흉해진 인심을 달래기 위해선 희생양 만들기를 통한 책임 전가가 필요했다. 그 희생양의 하나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기독교도를 없애려고 우물이나 샘에 독을 넣어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곳곳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약 900명의 유대인을 죽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전염병 마녀사냥’은 서양 중세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진 않지만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중국에서 제기된 코로나19 타국 발원설에서 그런 행태를 목격한다. 중국 호흡기 질병의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 공정원 원사는 “코로나19의 발원지가 꼭 중국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쩡광 수석과학자는 “미국 독감환자에 대한 혈청검사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 발원지로 미국을 지목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일 “바이러스의 근원을 분명히 밝혀라”고 지시해 코로나19 발원지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코로나 사태 수습을 위한 정치적 모색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부와 여당, 일부 지자체장의 신천지 강제수사 요구와 관련해서도 희생양 만들기 의혹이 인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코로나19 확산 책임론이 불거지자, 추미애 법무장관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강력히 대처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을 살인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신천지 신도인데도 교인과 시설을 숨기는 등 방역에 비협조적인 점에서 제재의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방역이 급선무인 만큼 신천지 교단의 자발적인 협조를 끌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방역당국의 입장이기도 하다. 강제수사를 앞세우다가 방역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방역은 과학이지 정치가 아니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나라가 80여 개국에 달하는 데서 이를 절감한다. 더는 정치로 과학(방역)을 해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