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다. 코로나19 얘기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31일 우한에서 폐렴 환자 27명이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자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4일 오전 9시 기준, 전 세계 76개국에서 9만2692명 감염, 3198명이 사망했다. 중동국가인 이란과 유럽의 이탈리아도 각각 감염자 수가 2336명, 2263명에 달할 만큼 증가세가 가파르다.
한국은 중국 외 지역에서 발생한 확진 사례의 절반이 넘을 만큼 감염자가 많다.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뒤 한 달간 30여 명을 유지할 때만 해도 곧 진정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지난달 18일 31번 환자 이후 하루 새 100명, 200명, 500명씩 확진자 수가 급속도로 늘면서 뉴스를 접하기가 무섭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과 이탈리아, 이란, 일본의 전염병이 우리의 가장 큰 걱정(concern)”이라고 밝힐 정도다.
유례없이 빠른 감염 속도에 국민의 공포심과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새 학기를 맞아 설레야 할 학생들은 개학, 입학 등이 3주간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2월 마지막 주부터 약 한 달 동안 집에서 지내야 하고, 대형마트마다 쌀 라면 생수 등 생필품을 사재기해 진열대가 비어 있기 일쑤다. SNS에는 텅 빈 마트 사진을 올리며 ‘전쟁 났냐, 왜 사재기를 하냐’는 비난성 글이 올라오지만, ‘뭘 더 사놔야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곤 한다. 마스크를 사려고 수백 m의 줄을 서는 풍경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에도 지금과 같은 공포심과 사재기는 없었다. 연일 한국발 방문객의 입국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국가·지역이 늘어나면서(3일 기준 91곳) 세계 10위 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인의 자존심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해마다 이맘 때면 되풀이되던 미세먼지와 황사 걱정은 정작 지금 상황에 맞닥뜨려 보니 배부른 고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일상이 정지했다고 느끼며, 관련 뉴스를 접할 때 ‘분노’ 감정 지수가 높아졌다고 한다. 4일 서울대 연구팀에서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2월 25~28일)를 보면 코로나19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불안’(48.8%)에 이어 ‘분노’가 21.6%였다. 1차 조사(1월 31일~2월 4일) 때보다 ‘불안’(60.2%)은 낮아진 반면 ‘분노’(6.8%) 수치는 3배 이상 높아졌다. 공포심도 11.6%에서 16.7%로 뛰었다. 특히 확진자가 속출한 대구·경북(TK)지역의 스트레스가 타 지역에 비해 심각하다고 한다.
코로나19의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미국의 CBS방송은 미 최고 보건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일반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의료용 백신과 별개로 코로나19를 퇴치하려는 ‘사회적 백신’은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을 돕기 위해 달려가는 의료진과 병상이 부족한 TK지역 환자를 수용하겠다는 타 지역 의료기관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에서도 코로나19의 최일선 현장인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근무를 지원하는 의료진과 의료진 및 자가격리자 등에게 필요한 성품을 전달하는 손길이 코로나19 퇴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의 도움을 먼저 받았던 이웃나라도 온정의 손길을 보내오고 있다. 중국 상하이시와 웨이하이시 등이 자매도시인 부산과 인천 등으로부터 지난달 전달받았던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몇 배로 늘려 다시 전달해 왔다.
아직도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방역정책과 마스크 공급의 혼란 등을 책망하고 따지기 전에 스스로 방역 주체가 돼 마스크 사용과 손씻기의 생활화,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좀더 철저히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해 보인다. 그 어떤 감염병도 인류를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문화부장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