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요즘이다. 불청객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시민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전반적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가운데 사람 모이는 곳을 서로 피하다 보니 영화관마저 예상치 못한 불황을 맞고 있다. 오스카상 4관왕 수상으로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던 영화 ‘기생충’은 물론 기대작으로 꼽혔던 다른 영화들도 흥행 성적이 좋을 리 없다.
이러한 와중에 ‘기생충’만큼은 아니지만,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을 만한 영화 한 편이 있다. 인기 배우 이병헌이 주연한 ‘남산의 부장들’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의 피살 사건에 초점을 맞춰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수개월 동안 벌어진 권력 핵심부의 균열과 권력투쟁 양상을 사실성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죽음을 추리기법으로 파헤친 것도 흥미롭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살해 장면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충실하게 그려낸 점도 평가할 만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여러 장면은 두 부장에 대한 일화로 이어가고 있지만, 그 정점은 단연 대통령 박정희의 죽음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정치 누아르이면서도 역사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박정희가 피살된 것은 10월 26일이고, 부마민주항쟁은 그보다 10일 전에 일어났으니, 두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부마민주항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신 반대 시위가 학교 담을 넘어 대규모 시민항쟁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시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항쟁의 불길은 곧바로 이웃 마산으로 옮겨붙어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 의지를 재확인해주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고 마산 일대에 위수령을 선포해 무력 진압으로 위기 상황을 넘기려 했다. 부마민주항쟁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이 구타와 구속, 고문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사망자까지 발생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의 불길이 부산과 마산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서 10·26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 부장은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직접 부산에 내려와 현장을 살피고 돌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강경 진압 입장을 고수했고, 끝내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부장은 대통령을 살해하였다.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부마민주항쟁과 10·26 사건의 인과관계 그리고 김재규의 ‘거사’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 몹시 궁금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개봉을 오랫동안 기다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그 자체로서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느껴졌으나, 영화에 대한 나의 앞선 기대와는 어긋났다. 영화는 10·26 사건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배경이 된 부마민주항쟁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김재규의 부산 현장 방문 장면도 생략됐다. 대화 장면 중에 또는 신문 보도 장면을 통해서 잠시 언급되었을 뿐이다. 영화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나 유신체제가 지닌 사회구조적 모순 문제보다는 박정희 측근들 간의 권력 암투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10·26 사건에 접근해갔다.
김재규에 대한 평가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거사를 했다는 그의 주장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그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의 불화가 강조됐다. 사건에 대한 해석을 어느 정도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도 영화적 기법이긴 하다.
설사 그렇더라도 부산의 현장을 목격한 김재규가 박정희 저격을 앞두고 겪었을 심리적 갈등은 좀 더 깊게 들여다봐야 했을 것이다. 유신의 권좌에 있던 그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역설을 헤아리기 위해서라도.
1980년 봄은 흔히 ‘서울의 봄’이라고 불리었다. 물론 착시였다.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군부의 등장으로 김재규가 막고자 했던 유혈 사태는 5월 광주의 비극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부마민주항쟁 40주년에 이어 올해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다. 이 두 사건은 시간상 불과 7개월을 두고 일어난 연속 사건이다. 그 사이에 10·26 사건이 존재한다. 봉준호 감독이 던진 오스카상 수상 소감 한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 이 말은 개인적 경험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작품의 가치를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은 한 편의 역사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마민주항쟁과 10·26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된 성찰을 담은 영화 한 편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동아대 명예교수·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