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최근 인사에서 모 고등학교로 발령받은 L 교장이 학교경영 방향에 대한 의견과 조언을 구한다며 찾아왔다. 부임할 학교에 대한 업무 인수인계 상황이 어떤지 물었더니, 현임 교장을 학교 밖에서 잠깐 만나 간략히 이야기를 들었고, 교무기획부장 또한 학교 밖에서 찾아뵙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학교장 업무를 인계하고 인수받는 데 이런 식으로 학교 밖에서 남모르게 살짝이 하고 만다면 신임 교장이 초기 단계의 학교 현황을 제대로 파악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니 지난 시절에 나 역시도 그랬다. 그 직책이 학교장이었든 학교가 아닌 기관장이었든 제대로 인수받은 적도 없거니와 인계하고자 하여 후임자를 오시라고 해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는 현임자의 재임 만료일을 존중하며, 후임자로서 미리 티 내지 않으려는 신임자와 종료일까지 혼자 책임지며 업무에 공백을 만들지 않으려는 현임자로서 미덕이 깔려 있으리라. 그러나 신임자로서 또 현임자로서 미덕이 부족했던 까닭이었던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제대로 업무가 인수인계되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어찌하다 인수받으려고 하면 “뭐, 별거 없어요. 그냥 와서 하면 돼요”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이러한 문화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의식은 무엇일까? 혹시 전임자는 “나는 여기에서 잘하다 이제 가니, 새로 온 네가 알아서 어디 한번 잘해 봐라”, 후임자는 “전임자 때 해온 일들은 나하고는 별 상관없으니 앞으로는 내 방식대로 하겠다”라는 뜻이었다고 받아들인다면 지나친 것일까?
만약 이런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면, 학교 현장에서 참으로 우려되는 것은 학교가 추진해온 많은 교육활동에서 전후 맥락이 생략되어 불연속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교장이 바뀌어 학교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이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신임 리더가 가진 교육적 철학은 그 조직의 경영에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리더 한 사람의 조직이 아니기에 과거와 단절된 오늘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
특히 교장은 학교 구성원과 공유한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교육 조건을 마련하여 이를 계획하고 조직하여 교육 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정하고 통할하는 과정의 책임자이다. 그래서 학교경영자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올해의 경우, 지난 2월 5일에 교사 인사를, 2월 12일에는 교장·교감 인사를 발표했다. 그리고 2월 17일부터 한 주간을 새 학년도 준비 주간으로 설정했다. 아마도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장이 현재의 자원을 충분히 가동해 새 학년도를 잘 준비하라는 취지에서 이를 시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학교는 이틀 또는 사흘간 모든 선생님이 한자리에 모여 새 학년도를 준비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문제는 학교장이 바뀌는 경우, 여전히 업무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신임 교장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소속 교직원들과 함께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의 연속성을 담보하면서 발전적인 활동을 촉진하도록 하는 학교장 업무의 인계인수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우선 인사 발표 후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현임 교장 선생님이 임석하고 부장 선생님들이 배석한 가운데 문서화된 자료로 교감 선생님과 행정실장님이 브리핑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학교공동체에 형성된 문화와 그 속에서 여태 학교 구성원이 고민하며 추진해 왔던 업무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임 교장선생님은 워크숍 기간 소속 선생님들과 함께 어울리며 브리핑 내용을 확인해갈 수 있다.
그리고 2월 마지막 날에는 다시 현임·신임 교장 선생님이 만나 미진한 부분을 논의하고 정리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신규 교장 연수를 학교 워크숍이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늦춰야 한다. 신임 교장 선생님 중심으로 교육활동을 충실히 준비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다듬을 필요도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 수 없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마치 이전부터 그 학교 리더로 존재해 왔던 것처럼 여길 수 있을 정도의 학교장 업무 인수인계 모형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전 충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