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부로 느끼는 대한민국 풍경이 너무나도 생소하다. 바쁜 걸음으로 일상을 재촉하던 도시의 시간이 멈춘 듯, 우리 일상이 달라졌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백화점이나 쇼핑몰, 카페, 식당, 영화관에 사람이 현저히 줄었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비닐장갑을 낀 사람들의 눈에서 불편함과 불안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문득 학창시절 읽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떠올랐다. ‘페스트’는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한 도시에 퍼진 흑사병을 소재로 한 소설로 전염병이라는 끔찍한 재난에 맞닥뜨린 다양한 인상 군상을 의사인 주인공 시점으로 관찰하고 묘사한다.
전신에 흑색 괴사를 일으켜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페스트는 중세 유럽인구의 1/3 정도를 죽음으로 몰아간 무서운 전염병이다. 영화 ‘컨테이전’(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코로나19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흡사한 영화라면 카뮈의 ‘페스트’ 역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우리 사회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의사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는 주인공, 서로 연대하며 재난을 극복하는 사람들, 도시 봉쇄와 이 틈을 노려 한몫 벌어보려는 기회주의자, 흑사병을 신의 뜻이라 주장하는 종교인. 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 마스크 사재기, 특정 종교 단체 등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는 모두가 마음을 모아 방역과 간호 등 페스트 확산 방지와 치료에 전념하면서 당당히 맞선다.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라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의 의지와 연대로 희망이라는 꽃을 피우는 것으로 ‘페스트’는 끝이 난다.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한마음으로 연대해 이 위기를 극복해 가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사태의 원인이 누구 혹은 무엇 때문이냐는 논쟁보다는 함께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전염을 예방하는 데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이 상황에 맞게 나름대로 대응할 일을 찾아야 한다. 공중보건위생의 중요함을 상기시키고,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며, 체온을 측정하면서, 호흡기 증상이나 발열 증상이 있는 환자나 해외여행 이력이 있는 환자는 비대면 상담으로 분리해야 한다. 경과 관찰이나 치료나 수술 등 부득이하게 내원해야 하는 경우는 환자를 엄격히 살피고, 시간대별로 환자를 분리해 감염 차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소의 2019년도 세계보건안정성 지표에서 대한민국은 195개 나라 중 세계적 유행병에 대응할 준비가 가장 잘 되어있는 나라 순위 9위를 차지했다. 미국 최상위권 명문대의 신뢰도 높은 조사 결과에도 한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이토록 악화된 데는 집단시설이나 종교행사 등 밀폐된 공간의 집단감염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며칠 코로나19 국내 확진자 수 증가세가 주춤하는 모양새다. 대구 경북지역 외에서는 집단 감염 양상이 비교적 약하게 나타난 점도 다행스럽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의 코로나19의 상황은 결코 낙관만 하거나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코로나19는 다른 바이러스와는 달리 초기에 경증 상태로 전파되는 특성이 있어 언제든 집단시설이나 종교행사 등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계기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해 안정 국면에 이를 때까지 지역과 종교를 불문하고 정부 지침대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격리 조치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중단돼 큰 불편함을 느껴 지금의 격리와 대응방식이 과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와 이웃을 위해 모두 노력해 사태가 더 길어지지 않고, 이 절망적인 상태가 꽃피는 봄날과 함께 소설처럼 해피엔딩으로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기대해본다.
파라디아성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