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는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급성 감염병으로 14세기 중기 전 유럽에 대유행한 이래 흑사병(黑死病·Plague)이라고 불린 전염병이다. 원래는 야생의 설치류의 돌림병으로 쥐의 벼룩에 의해 동물 간 감염을 시켰는데, 들쥐 또는 집쥐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됐고 사람 간 감염으로 사망률이 높았던 무서운 질병이다.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가 유럽에 전파된다. 유럽은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이 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가 엄청나게 줄었으며, 백년전쟁이 중단됐다고 알려졌다.
흑사병은 14세기 중세 유라시아 대륙에 창궐해 ‘역사를 바꿨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숫자로는 약 2500만 명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당시 사망했다고 한다. 그때 유럽 전체 인구는 7000만~8000만 명 정도로 추산하니 최소 3분의 1 정도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
인구 손실은 노동력 손실로 이어졌다. 이는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흔들어, 대규모 사회·경제적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 종교를 불신하게 했고,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전염병의 역습이다.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말라리아 등 다양한 전염병이 인류를 괴롭혔다. 16세기 유럽인이 퍼뜨린 천연두는 당시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시키며 잉카 문명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했다. 전염병은 인류 운명을 바꿔놓을 만큼 위협적이다. 다행히 오늘날 의학의 발전과 다양한 예방책으로 전염병이 인류 전체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을 가능성은 적어졌다. 하지만 전염병은 여전히 전쟁·기근과 함께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바꿔놓는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때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가 꺾이지 않고 기승이다. 연일 코로나19 소식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거의 실시간 대서특필로 전달되고 있다. 우리 삶과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일명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칭으로 일상 속에서 사회적 관계의 일시적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인류는 생존 방식을 찾아 새로운 사회현상과 문화를 찾아 나가는 중일 수 있다.
정부는 뒤늦은 대책보다 과잉 대응이 오히려 낫다며 철저한 개인위생과 방역을 강조하고, 개별적 활동과 외출 제한을 요청하고 있다 보니 사재기 열풍과 품귀 현상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고 일상생활은 무너졌다. 이와 함께 개인 불안이 사회적 불안 요소로 강하게 작용한다. 숲속에서 혼자 산책하면서도 마스크를 끼고 조심한다고 온라인에 올라온 인증샷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현재 비말 전염을 조심하고 철저한 개인위생과 함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면 숲속의 건강한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사회적 불안의 증가 속에 국제신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코로나19에 대한 보도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 속에 우리 시민이 힘을 내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기사는 부족하다. 우리 사회가 그간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으며 접한 언론보도를 회상해 본다. 패닉, 충격, 공포 등 불안을 암시하는 기사가 난무했다. 국제신문도 재난 극복을 위해서라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신문의 대응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런 변화가 이어지고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3월 들어 국제신문 기사는 사회적 불안이나 우울과 공포에 맞서고 이를 극복하는 심리적 방역을 주목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부산의 대표 정론지를 표방하는 국제신문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다. 위기일 때 기사를 통해 시민과 독자의 심리적 회복, 무기력증·불안·우울·공포 극복을 도와주면 좋겠다.
동구청소년상담 복지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