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公薦)이란 말에는 참 좋은 뜻이 담겨 있다. 공정하고 정당하게 천거한다는 게 사전적인 의미이다. 선거도 정당이 후보 천거를 잘했는지를 심판받는 절차다.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한 이는 무소속 출마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 정당 후보가 무소속보다 신뢰를 더 받는다. 정당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원론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고려하면 정당 공천은 당선으로 가는 유리한 길목을 차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등만 살아남는 데다, 지역구도는 뚜렷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양당 체제가 자리 잡은 탓이다. 영호남지역 중 ‘공천=당선’을 의미하는 곳도 있다. 이런 지역은 예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하다. 이래서 격한 대립과 잡음이 선거 때마다 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잡음의 정도다. 천거가 공정하지 못하면 후유증은 만만찮다. 이때 공천은 사천(私薦)이 된다. 더욱이 보스나 계보에 대한 충성심, 상대편 찍어내기 등이 벌어지면 당내 갈등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선거가 지난 20대 총선의 새누리당 공천이다. 친박(親朴)과 비박(非朴)의 공천 갈등에 당 대표가 직인을 가지고 사라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에 유권자는 외면했고, 결국 보수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됐다. 계파정치, 보스정치의 성향이 강한 정치 현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때 공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경선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원끼리 결정하는 코커스, 아예 비당원인 국민도 같이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식의 경선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역시 불공정 경선 시비나 지지 세력 간 분열 등 부작용이 심했다. 그래서 요즘은 직접 투표하는 경선보다는 여론조사로 대체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대선 후보 경선을 제외하면 가급적 하지 않는 추세다.
사천 논란은 본선에서 이기면 사라진다. 결국 심판은 유권자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천권을 쥔 이는 후유증을 감수하고도 물갈이를 한다.
오는 4·15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또다시 사천 논란을 빚고 있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을 겨냥한 양아들 공천, 수양딸 공천, 측근 내리꽂기 등의 반발이 거세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대표는 공천에서 배제되자 “막가는 ‘막천’”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이 20대 총선 공천과 같은 파장으로 확산할지, 통과의례에 그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이르다. 이 역시 최종 심판은 유권자가 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