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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영화 ‘사이드웨이’가 말하는 것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1 19:24:1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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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담긴 옛날 노래를 들을 때 울컥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연결고리가 있다. 추억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와인너리에서 ‘병 숙성’ 중인 와인.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한다.

친구는 공감의 대상이며, 고민이나 갈등을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힘이 된다. 오래된 와인을 마실 때의 감동이 있다. 하지만 좋은 와인은 오래된 와인이 아니라 숙성됐지만, 과일의 풍미가 살아 있는 와인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함이 있어 좋은 오랜 친구처럼 외로움을 달래주는 와인의 아로마. 그래서 나에게 와인은 추억이다.

와인은 변화무쌍하다.

포도는 재배하기 까다롭고 와인을 양조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다. 대개 병입 후 오래 숙성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 마셔야 하는 와인이 많다. 주로 화이트와인은 레드와인보다 영(young)한 상태에서 병입하며 그전에는 온도가 조절되는 스테인레스 스틸통에 보관한다. 이런 와인을 오래 ‘병 숙성’하면 오히려 신선한 과일향이 사라지게 된다. 바로 마셔도 좋지만, 오래 숙성하고 보관했을 때 품질이 더 좋아지는 와인도 있다. 숙성하는 동안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12~13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와인은 생명력을 지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마시는 시기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일즈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와인 1961년산 슈발 블랑을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고 아껴두었다고 말할 때 마야의 대답이다. 삶의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한 사람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발견하는 과정. ‘사이드웨이’는 와인을 비유해 삶의 딜레마에 빠진 한 중년 남자의 우울증이 치유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관심과 이해를 갖고 보살펴주면 마침내 최고의 향과 맛을 선사하는 와인처럼 우리 삶도 와인에 투영할 수 있다.

우리에게 특별한 순간은 언제인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 앤 푸어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기업의 평균수명이 15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자산 규모 100억을 넘긴 3만여 개 기업의 평균수명이 17년이 안 된다고 한다. 기업 수명이 짧아지는 것은 세상이 빨리 바뀌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변동성, 복잡성, 모호함이 지배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삶의 뒤안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비바람을 견디고 따스한 햇살 아래 익어가는 포도처럼 우리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방법이 필요하다.

“전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당신이 아끼는 1961년산 슈발 블랑처럼 제맛을 한껏 뽐내곤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영화 ‘사이드웨이’에서)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만큼 인생의 등굽잇길을 이겨낸 사람들. 이것이 바로 와인의 가치이고 삶의 가치이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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