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재난에 빠졌다. 대규모 집회나 이벤트는 물론 소모임과 쇼핑·여행 등 우리 일상사가 거의 중지됐다. 출입국 제한부터 해외 부품 수급 차질까지 국가경제도 난국에 처했다. 친지나 직장 동료 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시절.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침묵하는 봄’이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는 경제비상시국이라며 11조7000억 원의 긴급 추경예산안을 발표했다. 한편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더 큰 규모의 재정 투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다본다.
지난 11일로 동일본대지진·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지났다. 사상 초유 재난으로 일본에는 아직도 5만여 명의 이재민이 고향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2016년과 2017년 발생한 5.8~5.4 규모의 경주·포항 지진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초유 사건이었다. 지진, 쓰나미, 대형 폭발사고, 기후변화, 식량부족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재난이 앞으로는 ‘도둑처럼’ 들이닥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발생할 대량실업은 새로운 사회적 재난으로 다가올 것이다.
코로나19는 여느 자연재해처럼 주택이나 생산 기반시설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제활동의 급격한 위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 시기가 그야말로 예전의 ‘보릿고개’ 이상이다. 재난은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한다. GDP로는 드러나지 않는 대재난의 피해, 경제수치 이면에 있는 민중의 삶에 대해 이제 정치경제권이 답해야 할 때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국민 또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50만~100만 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논란은 재난시대 민중의 삶의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시대는 재난을 대비한 ‘재난의 정치경제학’을 요구한다. 재난의 정치경제학을 기반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국가사회시스템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원칙과 방향 그리고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첫째, ‘재난의 일상화’에 대한 대비다. 정부·국회·사법부와 기업·개인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미래 재난에 대한 예측과 예방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 ‘미래재난대책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지금 논란이 되는 재난기본소득 또는 기본소득도 태스크포스(TF) 팀을 통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둘째,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절감하듯 국가가 어떤 상황 어떤 단계에서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해야 할 것인지, 재난 예방 및 복구 관련 법령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집회·종교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안전), 정보공개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등에 대한 명확한 틀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자신의 방역활동’을 SNS에 홍보할 것이 아니라 당차원에서 ‘방역입법’을 공약화해야 한다. 정부는 재난 매뉴얼을 보급하고 지금부터 가정에는 마스크나 ‘생존키트’를 소화기 비치하듯 해야 한다.
셋째,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불안을 막을 수 있다. 이제는 중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저성장 또는 제로 성장을 생각하고 이에 맞는 생활양식도 몸에 익혀야 한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식량위기를 대비해 농촌을 살리고 식량주권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다. 경제성장률이나 GDP 같은 국가 평균 경제지표가 아니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느끼는 개인소득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 ‘기부와 나눔의 문화’ 확산과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유세 종부세 탄소세와 같은 경제정의 실현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끝으로 언론이나 학계는 이러한 재난에 대한 사회적 기록과 분석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 다가올 재난에 대응할 집단지혜를 끌어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무비유환(無備有患). 미래 재난방지를 위한 투자와 피해 구제가 우리 살림살이, 곧 경제이다(김해창 교수의 ‘재난의 정치경제학’ 칼럼은 국제신문 홈페이지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