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한 사람이 푸념했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지만 산책이나 운동 때도 벗을 수가 없다. 남 눈치가 보여서다. 안 쓰면 배려 없고 무신경하다고 욕하는 것같아 뒤통수가 따갑다.” 또 다른 친구는 “보건용 마스크를 못 구해 면 마스크를 쓰면서 위축돼 있는 나 자신에 놀랐다”고 했다. 무능력하고 시류를 못 따라가는 사람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아는 70대 어르신은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된 후 약국을 전전하다 겨우 2장을 구해놓고 “행복하다”고까지 했다. 우리의 일상을 놀랍도록 조여오고 있는 마스크 현상의 단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유럽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감염 방지에 효과 있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다. 안 써도 될 사람이 쓰고 있으니 정작 써야 할 사람이 못 쓴다. 의학과는 관계없는 사회학적 현상으로 보인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씨가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나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같은 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건강한 일반인에 대해서는 ‘마스크 착용이 호흡기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거의 없다’거나, 오히려 ‘쓰지 않기를 권한다’고도 돼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먼저 듣는 건 우리 정부의 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본부는 첫 코로나 확진환자 발생 때부터 “1회용이나 천보다 보건용이 안전하다” “최소한 KF80 정도를 써야 바이러스 차단에 효과가 있다”고 강력히, 그리고 꾸준히 권장했다. 이제 와서 면 마스크도 괜찮고 아예 벗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정부를 탓할 수는 있지만, 그런 정부 말을 믿은 국민을 나무랄 수는 없다.
전국에 마스크 생산업체는 130여 곳, 하루 생산량은 1000만 장 남짓이다. 일주일 내내 공장을 돌리면 7000만 장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5200만 국민에게 고루 배분하더라도 1인당 일주일에 1, 2장밖에 안 돌아간다. 만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2800만 명만 따져도 나눠줄 수 있는 수량이 일주일에 3장이 채 안 된다. 정부가 이런 마스크 수급 사정을 몰랐다고는 차마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정말 몰랐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일이면 괜찮다” “다음 주면 풀린다”고 국민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할 수 있었겠는가. 1인당 5장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가 그마저도 2장으로 줄였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처음부터 비감염자의 마스크 사용 원칙을 분명히 정해 제대로 알렸으면 지금같은 마스크 대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이라고 자화자찬하기 에 바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신천지예수교에 미운털이 박히자 이재명 경기지사는 신천지 과천본부를 급습, 강제 역학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관련 시설을 모두 폐쇄했다. 이만희 총회장이 머무는 가평 연수원까지 직접 달려가 코로나 재검을 압박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살인죄’를 들먹이며 이 총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신천지의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덕분에 지지자들의 박수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신천지의 잘못된 전도 행태와 폐쇄성을 놓고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이미 국민적 지탄이 폭발하는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비등한 여론에 편승해 ‘동네북 한번 더 세게 때리는’ 광역단체장들의 행동이 방역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세월호 때 구원파의 유병언 회장을 쫓던 당시 권력을 떠올릴 것이다.
상처에 소금 뿌리는 망언들은 또 있다. 부산의 한 여권 관계자가 “신천지와 코로나 위협이 대구 경북에만 두드러진 이유는 한국당을 광신하는 지역민의 무능 탓”이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타 지역으로 감염자가 이동하지 않으면 상관 없다.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도 했다. “대구 경북에 대해 최대한의 봉쇄정책을 쓰겠다”고 했다가 여당 수석대변인이 사퇴한 지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정파에 빠져, 진영 논리에 빠져 이성을 잃은 것이다. 아니 제 정신이기를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전문가들이 마스크 쓰기와 함께 강조하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잠시 자신을 멀리 떨어뜨리는 것, 그것이 인류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병마를 가장 슬기롭게 이기는 길이다.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 당국, 그 틈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겠다고 설치는 정치인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이들에게서 한발 물러나 냉정하게 응시할 수 있는 거리두기일 것이다.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면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불편을 감수하는 대다수 국민과 함께 말이다. 마스크 대란에서 건져올린 의외의 깨달음이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