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이헌길과 다산, 코로나19 /강명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5 19:28:36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775년 서울에 홍역이 크게 번져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상중에 있던 이헌길(李獻吉)은 그때 마침 서울에 있었다. 볼일을 보고 성문을 나서는 참이었다. 수레에 실린 관(棺)과 지게에 얹힌 시신이 줄줄이 앞을 지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100여 명이 되었다. “내가 저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 상중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떠나는 것은 어진 마음이 아니지.” 그는 발길을 돌려 서울 시내 친척 집에 머무르며 의술을 펼쳤다.

이헌길로부터 치료와 처방을 받은 사람들은 증세가 완화되었고 이내 병이 나았다. 열흘이 지나자 병고(病苦)를 호소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거리를 메웠다. 행세깨나 하는 사람은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해가 져서야 겨우 이헌길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도 한마디 처방이라도 얻어 가면 효험을 보았다. 이런 까닭에 워낙 사람이 많이 몰려들어 그가 길을 나서면 에워싼 사람이 흡사 벌 떼가 뭉쳐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멀리서도 그것을 보고 이헌길이 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아닌가.

상중에 있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 이헌길의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타심의 지극한 발로다. 하지만 위급할 때 사익을 챙기는 사람도 나오는 법이다. 이헌길은 악소배(惡少輩)의 꼬임에 빠져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후미진 곳으로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의술로 돈을 벌어보려는 자들의 수작에 걸려들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내 소재처가 알려지고 환자가 몰려들자, 이헌길은 따뜻한 말로 사과하고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돈벌이와 상관없는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환자가 밀려들었다. 이헌길 혼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환자를 직접 볼 수 없는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병증에 따른 처방을 입으로 불러 주었고 사람들은 그 처방으로 병을 이길 수 있었다.

이헌길의 의로운 의술은 다산 정약용이 쓴 ‘몽수전(蒙叟傳)’에 나온다[몽수는 이헌길의 자(字)다]. ‘몽수전’에 따르면 그는 정종(定宗)의 후손이지만, 윗대에 서자(庶子)가 있었던 듯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는 대신 의술을 파고들었다. 특히 홍역 치료법을 연구하여 ‘마진기방(麻疹奇方)’이란 의서를 쓰기도 하였다.

다산은 어렸을 때 홍역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헌길의 치료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는 이헌길의 은혜를 갚고자 ‘마진기방’을 다시 깊이 검토하여 ‘마과회통(麻科會通)’이란 저술로 발전시킨다. 곧 ‘마과회통’이라는 의학사(醫學史)의 명저는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다산은 ‘마과회통’의 서문에서 송나라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퍽이나 곱씹어 볼 만하다.

범중엄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글을 읽고 도(道)를 배워 천하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한다. 만약 이 길을 걸을 수 없다면, 황제(黃帝, 중국 의학의 창시자)의 의서(醫書)를 깊이 공부하고자 한다. 이 역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범중엄의 이 말은 의료의 본질적 성격을 꿰뚫는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와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인, 자원봉사자, 관계 공무원들이 바이러스에 맞서 분투하고 있다. 이헌길·다산과 다를 바 없는 이타적 심성을 실천에 옮기신 분들이다. 이분들의 노력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 모두 상호부조의 마음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었으면 한다.

사족. 다산은 1801년 신유옥사(辛酉獄事)로 장기(지금의 포항)로 유배되었을 때 시골 사람들이 변변한 의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촌병혹치(村病或治)’란 책을 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을 중심으로 만든 간단한 의서다. 귀양살이가 억울하고 답답했을 터인데 시골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여 의서를 쓰다니 과연 다산이라 하겠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7> 진주 옥봉지구 새뜰마을
  2. 2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상영지역 중구까지 확대
  3. 3[사설] 사회적 거리두기 2주 연장…국민적 협조 중대고비다
  4. 4코로나 진단키트·손소독제 수출 폭증…‘K-방역’ 세계 입증
  5. 5[세상읽기] 거짓과 위선, 탈중국화의 일본사례 /이호철
  6. 6“부산 대기업 유치전략 궁금”…“내가 후보라면 대중교통 공약”
  7. 7안산도시공사, 운동장 필기시험 진행
  8. 8기업 1분기 영업익 17%↓암울한 전망
  9. 9“조합이 주민 간 소통·협력 구심점…복지 향상 위해 노력할 것”
  10. 10시공간 속 찰나의 삶…작품으로 주고받는 두 예술가의 대담
  1. 1부산선관위 150만 가구에 선거공보 발송·투표소 912곳 확정
  2. 2총선 유권자 4399만 명…만 18세 54만 명(1.2%)
  3. 3주한 미군, 코로나19 지침 어진 병사 3명 ‘훈련병’ 강등
  4. 4“부산 대기업 유치전략 궁금”…“내가 후보라면 대중교통 공약”
  5. 5부울경 미래한국 32% 범진보 34%…비례정당도 PK 혈전
  6. 6SNS에 지지후보 소개 가능…특정 정당 기재된 모자 착용은 안 돼
  7. 7진주을 무소속 이창희 방송토론 배제에 반발
  8. 8창원성산 범진보 단일화 일단 무산…노동계 “뭉쳐야 산다”
  9. 9울주 검경 출신 후보 ‘하명수사’ 공방…김영문 “재판 봐야” 서범수 “불법 공작”
  10. 10경찰 실수로 전과누락 위법 판단…‘특정인 찍지말자’는 문제 없어
  1. 1코로나 진단키트·손소독제 수출 폭증…‘K-방역’ 세계 입증
  2. 2기업 1분기 영업익 17%↓암울한 전망
  3. 3코로나 진정돼도 저금리 장기화 땐 구조적 불황 우려
  4. 4KIOST(한국해양과학기술원), 안산 본원 매각…부산 청사 건립비 ‘숨통’
  5. 5기업은행 창업 육성 플랫폼 3개 센터 혁신 창업기업 공모
  6. 6공정위 부산사무소장 피계림, 첫 여성 지방 소장으로 발탁
  7. 77조1000억 2차 추경안, 이르면 금주 국회 제출
  8. 83월 건보료 기준…가족과 따로 사는 1인 청년·노인은 별도 가구로 봐 지원
  9. 91분기 농식품 수출 5.8% 늘어
  10. 10정부, 연안여객선 운항관리비 부담금 일시 유예
  1. 1부산 13일째 지역사회 감염 ‘0명…추가 확진도 나흘째 없어
  2. 2[오늘날씨] 전국 맑고 일교차 커…강원 지역 한파주의보
  3. 3사천에서 코로나19 확진자 2명 발생
  4. 4부산 음주운전 30대 시내버스 들이 받아…가스 유출
  5. 5서울아산병원서 두 번째 확진자 발생…첫 확진자와 같은 병실 환아 보호자
  6. 6의정부성모병원 입원했던 50대, '확진 판정 하루 만에 사망'
  7. 7경남 코로나19 전담병원 마산의료원 간호사 확진…응급실 일시 폐쇄
  8. 8군포시, 자가격리 무시 후 확진 판정 받은 부부 고발
  9. 9온라인 개학 이후 초등 1∼2학년은 스마트기기 없이 EBS·학습자료로 수업
  10. 10코로나가 쏘아올린 기본소득 ⑥ 부산 재난관련 지원금 5가지
  1. 1프리미어리거, 연봉 30% 삭감 반대…“부자 구단만 이득”
  2. 2내년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1997년생도 ‘태극마크’ 단다
  3. 3LPGA 투어 6월 중순까지 중단
  4. 4‘전설’ 코비 브라이언트,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5. 5“허약한 수비 보완, kt 색깔 맞는 농구 선보이겠다”
  6. 6테니스 라켓 대신 프라이팬…랭킹 1위의 ‘집콕 챌린지’
  7. 7‘백수’ 류현진·추신수, 일당 1억 이상→582만 원
  8. 8토론토 6월까지 행사 금지…“MLB 7월 개막이 적합”
  9. 9샘슨 4이닝 무실점·마차도 홈런포…외인 에이스 ‘이상무’
  10. 10144년 전통 윔블던 대회도 취소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기고 [전체보기]
더 힘들고 연약한 우리 아이를 위하여 /여승수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상을 찾기 위해 /손현진
기자수첩 [전체보기]
억측과 갈등만 낳는 낙동강청 /임동우
양산 도로 침하 사고의 교훈 /김성룡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귀하디귀한 악기 ‘편경’
강강술래와 농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인내의 시간, 염치를 갖자 /송진영
부산시의 뒷북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맬서스의 저주’
슬기로운 ‘집콕’ 생활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여든 살 어머니의 만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도다리쑥국
아시정구지의 추억
사설 [전체보기]
사회적 거리두기 2주 연장…국민적 협조 중대고비다
건보료 기준 긴급재난지원금, 혼란 최소화 보완을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국민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허황된 중국경사론
“한미동맹, 이상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전쟁의 얼굴
호의가 낳은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가 지구촌에 던진 경고
코로나 최전선 지방정부엔 여야가 없다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사계’ 연주의 전설, 이 무지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의 르네상스
영화 ‘사이드웨이’가 말하는 것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소치 허련이 그린 도깨비 그림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하프마라톤대회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