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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그래, 우린 사람이었지 /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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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3-15 19:27:5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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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예정됐던 강의가 다 취소됐다. 일하던 문학관도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백수가 된 것이다. 이 기회에 글을 좀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확진자 동선이 공개되면서 가게, 사람, 물건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이러스’로 보였다.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은 면회 금지였다. 엄마가 물티슈가 부족하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갔지만, 엄마 얼굴을 보기는커녕 문 앞에서 직원에게 물건만 건네주고 쫓겨나듯 길에 나서야 했다. 일회용 마스크를 1장에 4000원씩 들여 몇 개 주문했는데 열흘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간경화를 앓는 아빠가 감염될까 봐 불안에 몸을 떨었다.

‘신천지’ 기사를 읽다가,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해 못 할 언행을 보다가, ‘투잡’을 뛰었다던 젊은 감염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마음이 자꾸만 어두워졌다.

뜻밖에도, 이 어두워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잡아준 것은 고양이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심신 안정을 줬다는 뜻은 아니다. 내 고양이답게 녀석들은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수습을 하느라 어두운 마음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해 봄, 우리 집 옥상에 네 마리 새끼를 낳았던 길고양이 ‘옥상 댁’은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출산했다. 두 번째 배에 낳은 새끼 5마리는 금세 다 죽었고 4마리 혹은 5마리로 추산되는 세 번째 배에 낳은 새끼도 두 마리만 살아남았다. 옥상 댁은 겨울을 나기가 고단했던지 다시 우리 집에 왔다. 연이은 출산 때문에 옥상 댁의 몸은 앙상했다. 봄부터 구청에 중성화 수술을 신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옥상 댁을 두고 싸우는 수컷 고양이들의 소란 탓에 밤마다 동네가 시끄러웠다. 우리 부부는 거금을 들이기로 했다. 옥상 댁과 첫 배에 낳은 새끼들을 데리고 가 중성화 수술을 했다. 회복기 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게 했다. 회복하면 떠날 줄 알았는데…. 고양이들의 애교에 혼을 뺏겼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옥상에는 고양이 8마리가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어느 날, 죽은 새 한 마리가 집안에서 발견됐다. 컵이 깨지고 책장의 책이 쏟아졌다. 이갈이하는 새끼 고양이들이 옥상 난간을 지나가는 인터넷 연결선을 씹는 바람에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이나 인터넷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다. 수리 신청이 밀려 하루 뒤에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고양이 때문에 중요한 업무를 보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다시 수리 기사를 부른 날에는 오히려 담담했다. 씹힌 선을 정리하는 수리 기사님의 발 옆에서 흔들리는 선에 덤벼드는 철없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면서 결국 내 마음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없다고 해서 ‘불안’에 사로잡힐 정도로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선물로 받았지만 아까워 십 년 가까이 먹지 못하던 ‘산삼주’가 박살 났다. 자그마한 녀석이 점프하다가 병이 깨졌고 액체는 나무선반이 모두 마셨다. 아주 조그맣지만, 그것도 삼이라고 향이 굉장했다. 향이 짙어질수록 남편의 미간 주름은 깊어졌다. 아직도 우리 집 벽시계 위에는 남편이 보내지 못한 산삼이 빼빼 마른 채 놓여 있다. 박살 난 산삼주는 엄마를 새삼 떠올리게 했다. 귀한 줄 알았으면 평소 자주 봤어야지,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저지른 일은 코로나19 탓에 조금 비틀리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지니고 있던 일상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깨끗한 물이 담긴 물통에 검은색 먹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고 그것이 천천히 풀리는 걸 보면서 같이 흐려지고 있는데 누군가 툭, 물통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치우기 바쁠 때의 마음. 고양이가 잡아준 내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코로나19’때문에 ‘어두워진 마음’으로 물통 안만 들여다보는 일에서 벗어나 ‘쏟아진 물통’을 치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물통 바깥’도 보인다. 결국 ‘코로나19’도 ‘고양이 8마리의 사고’도 정체 파악은 좀 힘들지만 들여다보면 분명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사람의 몫. 물은 닦으면 되고 물통도 세우면 된다. 앞으로는 물통 위치도 새로 잡아야 할 것이다. 각지에서 들려오는 미담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그래, 우린 바이러스가 아니었지. 사람이었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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