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정부 세종청사 곳곳에 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한 열화상감지기가 설치됐다. 이어 각 정부 부처를 연결하던 통로가 폐쇄됐다. 며칠 전부터는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안면인식장치 작동마저 중지됐다. 본인 인증을 위해 기기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짧은 순간에도 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수 있어서다. 최근 세종청사 내 부처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보안 조치는 더 엄격해졌다. 감염병 관리를 총괄하는 곳이 무너지면 대책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열화상감지기를 지날 때마다 조금은 불안해진다. 혹시 감염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우려 탓인지 괜히 열이 나고 목도 아픈 듯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혼자만 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검진을 받았던 이들은 최종 결과 통보를 기다리는 24시간이 그렇게 길 줄 몰랐다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 가고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더라고 했다.
의학계에서는 이 같은 행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정상 반응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 때는 어느 정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야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한다.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바이러스가 유행하는데도 이에 대한 경계심이 아예 없으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심리 방역’이라 부른다. 이어 지금은 물질적 방역 못지 않게 심리 방역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이런 심리 방역을 무너뜨리려는 암초가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의 초기 대응 미흡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방역체계는 지금 세계의 주목을 끌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부가 사태를 다소 안일하게 보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국민이 느끼는 공포감도 필요 이상으로 확대됐다. 거의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여서 충격이 더 컸다.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 뉴스’도 국민의 심리 방역 와해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사태 표면화 이후 우리 사회엔 듣고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미확인 정보가 끊이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거짓 영상을 비롯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온갖 의학 관련 글이 사실인 양 떠돌아다닌다. 게다가 이런 거짓 뉴스는 대담하게 정부 및 전문기관 등을 사칭한다. 일반인은 접근이 어려운 해외취재원을 들먹이기도 한다. 정치적 복선이 깔린 계획된 거짓 뉴스 또한 차고 넘친다. 총선이 임박한 터라 그렇지 않아도 상대방을 물고 늘어져야 할 터인데 코로나19와 같은 일이 생기니 호사가들이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과도한 정보 탐색을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걸러지지 않는 글들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어쩔 수 없는 불안은 애써 피하려고 하기보다 꼭 필요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한편 개인 판단에 의존하는 대신 방역 당국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언급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민을 위한 마음건강지침’이라는 글을 통해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불안감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라며 “하지만 이것이 과도해지면 면역력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2일 지역별 생활치료센터 설치 및 운영 방안을 내놨다. 이 시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에서 보유한 공간을 활용해 경증 코로나19 환자를 격리 치료하고 정신과 의료진을 배치, 전문 상담도 진행한다. 또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일반인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널리 홍보가 되지 않는 까닭에 이 같은 시설의 존재나 이용 방법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물리적 방역과 더불어 심리 방역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론 정부라고 해도 코로나19처럼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바이러스를 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개개인의 정신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감염병의 위험을 과장하지도, 의도적으로 낮추지도 않아야 한다’는 위기관리 지침은 꼭 지켜야 한다. 아울러 거짓 뉴스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국민을 대상으로 정확한 상황 정보 제공도 뒤따라야 한다. 당연히 국민도 정부와 힘을 합쳐야만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확산 때도 심리 방역 실패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뒤늦게 나온 바 있다. 그런 아픈 상처들이 재발돼서는 안 될 일이다.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