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면구스러운 얘기지만, 인간은 평균 세 끼 정도 먹으면 한 번은 배출해야 한다. 당연히, 몸속 찌꺼기가 쌓이면 병이 된다. 살아 보니 우리네 감정도 그런 듯하다. 실타래처럼 얽힌 인간관계, 각자 사회적 역할에 매몰돼 부대끼다 보면 저마다 가슴속에 감정의 찌꺼기가 생기기 마련. 제때 배출해주지 않으면 정신의 병이 깊어질 수도 있을 터.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배출하겠지. 술을 마시고, 등산이나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로 풀기도 하고.
나는 좀 독특한 방법을 쓰고 있다. 록밴드 활동으로 그 찌꺼기를 제거해왔다. 세어 보니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다. 초라한 시작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필수조건이다. 낡은 사진첩에서 툭 떨어진 사진 한 장. 고등학생 시절 소풍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 그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통기타. 갑자기 불붙는 음악 열정. 그래, 시작해보자. 그게 30대 중반이었다. 인터넷에서 가장 싼 전기기타를 사고, 여기저기 동호회를 기웃거리다가 직장인밴드 모임을 찾아 들어갔다.
더듬더듬, 허둥지둥, 우물쭈물. 마음만큼 뜻대로 안 되는 손가락. 박자와는 완전 따로 노는 발장단. 시작은 같았으나 항상 먼저 끝내고 편안히 쉬는 서너 박자. 아, 나는 소질이 없구나.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인가. 하지만 좋아서 하는 건 쉬 포기하지 않는 법. 한 박자, 한 마디씩 맞춰 가는 쾌감이 어마어마했다. 내 움직임으로 생긴 소리가 음악이 되다니. 생경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까 낮에 가슴을 때리고 간 직장상사의 악다구니 따윈 이미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뒤였다. 아침 출근 때 집에 떼놓고 온 간, 쓸개가 덜컥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황홀경 같은 합주가 켜켜이 쌓여 드디어 첫 공연을 하던 날, 수도 없이 연습한 여섯 곡을 머릿속으로 오조오억 번 되새기면서 관객을 마주하던 그 순간. 앞 팀 공연이 끝나기도 전부터 부들부들 떨리던 몸뚱어리를 무대로 밀어 올렸던 그 순간. 30분 러닝타임 동안 뭘 하고 내려왔는지 지금은 조금의 기억도 남아 있지 않지만. 날 비추던 조명, 땀으로 미끄러워진 피크의 감촉, 어깨를 무지근하게 누르던 기타의 무게, 앰프캐비닛을 터뜨릴 듯 뚫고 나오던 소리, 지하공연장 곰팡내는 세포 하나하나에 문신처럼 각인돼 버렸다. 이제 내게 밴드는 취미 정도가 아닌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처럼 무섭고 짜릿한 중독이 되어버렸다.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해 사는 대로 생각하는 평범한 중년의 삶. 오늘은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장삼이사의 삶. 그렇게 30년, 40년 고여만 있는 무색의 물웅덩이에 붉은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날이 하루 정돈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무채색으로 삶의 절반을 살아왔으면 이젠 자기 색 찾을 때가 된 것이다. 비록 이전의 무색으로 돌아가진 못해도 붉게 물든 물웅덩이 그 나름의 락킹한 멋이 있으니까.
오십을 하늘의 뜻을 깨우치는 지천명이라 했던가. 선인의 삶의 무게가 어찌 지금과 같으랴만, 오늘 기준으로 봐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연습 날만 되면 퇴근 후 후줄근한 몸뚱어리를 추스르고, 헤진 볼캡 눌러 쓰고, 합주실행 전철에 몸을 싣는다. 어깨엔 낡은 전기기타와 록앤롤 스피릿을 들쳐 메고.
“상우야, 두 번 더 친 거 같은데.”
“뭔 소리고? 메트로놈 들으면서 치는데. 네가 빨리 들어간 거 아니가?”
“아무튼 기타 소리 좀 줄입시다. 보컬 목소리가 안 들려요.”
“자, 다시 녹음한다. 이번엔 틀리지 마라.”
믿을 수 없겠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배출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기까진 ‘평상시’ 이야기다. 지금은 ‘전시(戰時)’ 아닌가? 우리 일상을 덮친 이놈의 코로나19 탓에 직장인밴드의 합주실마저 임시로 문을 닫은 지 벌써 오래다. 아! 함께 모여 노래 불러본 게 언제였던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감정의 찌꺼기도 쌓인다. 그래도 기죽지 말자. 언젠가 바이러스도 물러가고, 우리 모두 모여 노래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틴다. 록밴드 정신으로!
GA코리아 지점장·직장인 밴드 히드락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