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6월 22일 “전선(戰船)을 토괴(土塊)에 얹어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목수가 이백열네 명이다.” 9월 15일 “정철총통(正鐵銃筒)은 전쟁에서 가장 긴요하게 쓰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작하는 묘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이제야 온갖 방법으로 생각해 내어 조총을 만들어내니, 왜군의 총통과 비교해도 가장 기묘하다. 명나라 사람들이 진중에 와서 사격을 시험하고서 잘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음은 이미 그 묘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도내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넉넉히 만들어 내도록 순찰사와 병사에게 견본을 보내고 공문을 돌려서 알리게 하였다.”
임란 발발 이듬해 쓴 ‘난중일기’이다. 이순신 장군은 왜의 속도전으로 나라를 잃을 절체절명 위기에서 한산대첩으로 왜군 해로를 차단하고, 명과 왜의 정치적 협상으로 소강 국면을 맞자 전선 건조와 무기 제조에 박차를 가한다. 전환기를 맞은 이순신 장군의 선택이었다.
5년의 불황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고 있는 조선 산업에 ‘턴어라운드(Turnaround)’ 바람이 분다. 해운업계와 조선업계를 둘러싼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은 패러다임 변화뿐 아니라, 가치사슬 판도의 근본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규제는 NOx, SOx, CO2의 배출기준을 예고된 일정으로 강화하며 사용 에너지의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친환경스마트선박, 스마트 조선소라는 ‘해탈’의 수준까지 이르러야 통합적 규제를 맞출 수 있다.
규제가 요구하는 기술혁신은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큰 전환 시기를 맞을 것이다. 천연가스 추진 선박 실용화는 기정사실이 됐고 수소전지·전기·원자력·바이오연료·초전도 추진뿐 아니라 태양전지, 풍력 등 다양한 조합이 개발되고 적용될 것이다. 기술 발전 속도는 환경규제와 경제성의 갭을 빠르게 줄일 것이다.
해운사는 운용 선종에 따라 최적 솔루션을 택해야만 하고, 해운 인프라와 조선소, 기자재 제작사 등으로 구성된 생태계의 변화는 필연이다. 해운, 조선업의 선택지는 무엇이 되든 큰 자본과 장기간 투자로 높은 리스크를 안는다. 전환기의 선택과 결단에는 기업의 생사뿐 아니라 생태계의 미래가 걸려 있다.
씨앗이 땅속에서 발아하는 동안 우리는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새싹이 땅을 뚫고 나와야 변화를 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씨앗 단계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한다. 아니면 변화의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통신사의 상반된 보고, 대마도주의 경고, 왜란 발발, 이순신 등장, 선조 피신, 옥포해전, 한산대첩, 명나라 원군 참여, 이순신 숙청, 칠천량해전 참패, 이순신 복귀,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은 전란의 절점(節點·물체의 마디가 진 부분)이다. 보이는 변화였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면서부터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선택을 한다. 대세 흐름과 패러다임 변화를 읽고 준비한다. 발달하고 준비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기는 강점을 강화한다. 전선과 거북선을 만들고, 대포 주도형 전략을 세우고, 화포·화약을 준비하며 군사를 훈련한다.
전략 실행에 맞는 조직과 시스템도 구축한다. 전략전술, 군수지원, 전선 건조·무기 제조, 정보관리, 수군관리 조직을 구성하고 시스템화한다. 정신무장, 군기 확립, 인재 확충, 평가제도 등을 통해 특유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군대 유지와 백성의 생존을 위한 둔전과 말업(상업) 등 육성, 해상 물자교역 등으로 ‘한산수국(閑山水國)’의 해양시대를 연다.
대전환 시대는 오고 있다. 기술이 주도하고 지구 환경과 에너지 패권 경쟁이 방향과 속도를 제어한다. 긴밀한 관계를 가진 조선해운 전후방의 가치사슬을 새로운 변화의 퍼즐을 풀 듯 우선순위와 새로운 고리를 재구성하고, 무엇을 주도하고 어떻게 연결해 나갈 것인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공급자의 영업전략은 고부가·고품질 첨단 선박 중심의 계영배(戒盈杯)전략으로 절제와 여유를 택해야 하고, 국가 간 연결과 기술지배력을 강화할 로컬 콘텐츠 전략을 병행해야 지속성과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기술 분야는 이미 실용화 단계에 있는 인공지능(AI)과 스마트기술 그리고 청정에너지 추진시스템을 과감하게 적용해야 한다.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시간과 자본, 신기술의 숙성기간을 고려해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함께 연착륙시켜야 한다.
그리고 연구개발 프로세스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효과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환란 중에도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