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어느 상점 바닥에 앉아 등잔 불빛을 받으며 아이는 몸을 수그린 채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주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불편함, 소음, 혼잡함, 그의 곁에서 벌어지는 거칠고 폭력적인 삶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숲 한가운데, 그 상점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등잔 불빛 아래서 홀로 글을 읽는 아이는 우연히 그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중략)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지구상에, 성(性)과 언어와 종교가 무엇이든, 어떠한 아이도 향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굶주림과 무지에 내던져지지 않기를. 그 아이는 자기 안에 인류의 미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썼듯, 그 아이에게 절대적인 힘을 주기를.”
프랑스 문학가 르 클레지오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그 어떠한 아이도 인류의 향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변이 혼잡하고 불편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아주 작은 불빛 아래서 글을 읽는 그 보잘것없는 아이에게 온 인류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헐벗고 굶주리고 연약한 아이마저도 소외되지 않고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인류가 이루어낼 수 있는 가장 존귀한 미래이다. 화려한 불빛과 풍족한 먹거리, 떠들썩한 음악과 넓은 집을 가지는 것이 빛나는 문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대단한 것을 모두가 이롭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류의 위대함이다.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혼란을 겪는 지금, 우리에게는 르 클레지오가 평생 글쓰기의 지표로 삼은 이미지처럼, 그 아이를 떠올릴 고요하지만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순간 굶주리는 아이가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해 급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정부 추산 결식아동 수는 전국 약 28만 명, 현재 결식아동에게 제공하는 ‘꿈나무 카드’에 지자체별로 식비를 더 지급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꿈나무 카드를 신청하지 못하는 아이는 혹시 없을까. 그 카드를 들고도 급식만큼 영양식으로 차려진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는 또 얼마나 많을까. 부산시교육청에도 전화로 확인한 바, 기관 협력을 통해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지원받을 수 있게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 무료 급식소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으니, 이 아이들에 대한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조사와 그에 맞춘 지원이 필요하겠다.
밥을 굶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학습적으로 아이들이 받는 피해는 엄청나다. 예상치 않은 공백의 시간에 학교마다 재량껏 과제를 내거나 인터넷 강의를 병행한다. 얼마 전,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아 집에서 공부하는 한 아이가 “과학교과서 내용을 ‘반드시 검은색 볼펜’으로 ‘글자들이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도록’ ‘남이 보기에 혼돈을 일으키는 글자는 고치는 연습’을 하는 학교 숙제가 주어졌다고, 중학교 3학년에게 주어지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과제라 충격을 받았다”는 문자를 내게 보내왔다. 과학교과서 내용을 필사하며 공부하라는 큰 뜻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아이들의 귀한 시간을 글자 쓰기 연습을 하는 데 쓰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타당한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공공적으로 현재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가? 공영방송에서 좋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긴급 편성해서 가족이 함께 보고 토론하거나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금 일어나는 시국에 맞춰 문학작품을 읽고, 토론 질문을 공유해 서로 생각을 나누는 전국 온라인 토론 한마당을 교육청이나 학교 단위로 만드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 상상력이야말로 지금 이 시간에 아이들을 불평등한 사교육 시장에 내던지거나 불합리한 교육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아이들의 왕’이라 불리는 야누시 코르차크(1878~1942)는 소아과 의사 시절, 열이 나는 아이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해줄 수는 있지만 그들이 겪는 가난, 착취, 무법, 범죄에 아무것도 처방해줄 수 없다는 것에 괴로워했다.
무엇을 처방해야 어린 환자들의 삶을 정의롭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공포가 전 세계를 덮쳤을 당시 아이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며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그들이 삶의 주인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집단학살로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 야누시 코르차코는 아이들에게 가장 멋진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그들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지금 이 전염병의 시대에 떠올려야 할, 온 인류의 미래를 간직한 아이는 누구인가? 무엇을 처방해야 어린 아이들의 삶을 정의롭게 바꿀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통해 직접 아이들에게 내민 손이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인류의 존엄을 지켜줄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백신이다.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