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매년 이맘 때면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가곡 ‘동무생각’이 생각난다. 이 노래에는 박태준의 소년시절 추억이 서려 있다. 그는 대구 계성학교에 다닐 적에 인근 신명학교의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박태준은 1922년 마산 창신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 동료 교사였던 이은상에게 그 추억을 털어놓았다. 풋풋하고 애틋한 사연에 감동한 이은상은 즉석에서 가사를 써줬다고 한다. 청라언덕은 대구 중구 동산동 언덕을 말한다. 그 언덕에 자리한 의료박물관(챔니스 선교사 주택)과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선교사 주택) 사이에 ‘동무생각’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쯤 그곳에 백합과 흰나리꽃이 피었겠다. 이들 꽃과 푸른 담쟁이덩굴(청라)의 빛나는 보색 대비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청라언덕에서 1㎞가량 떨어진 근대문화골목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있다. 시인은 이 집에서 1939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오지 않는 ‘민족의 봄’에 대한 시인의 갈망이 자못 절절하다.
이 시가 발표된 지 90여 년 지난 지금 대구시민들은 또다시 처절한 ‘봄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뒤 한 달 동안 확진자가 6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2500여 명을 전국 72개 병원에 이송했는데도 아직 병상이 모자라 240여 명의 환자가 집에서 대기 중이다. 사망자도 50명을 넘었다. 시민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한 달은 마치 꿈을 꾼 기분이었다.” 당면한 현실이 너무 놀랍고 두려워 자신이 살아 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그래도 시민은 꿋꿋하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부친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고 동생과 둘이서 장례를 치렀다. 또 어떤 이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를 하러 의료 현장으로 달려갔다. 고생하는 의료진에 대한 도시락 선물도 쇄도한다. 올해 대구의 봄은 특별하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백합이요, 흰나리꽃이요, 푸른 담쟁이덩굴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꽃과 청라언덕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그렇게 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