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올봄에는 슬픔이 밀려온다. 따뜻하고 훈훈한 바람이 부는 계절의 풍경을 노래하고 즐길 여유가 없는 탓이다. 코로나19로 이름 붙여진 전염병 때문에 봄날의 아름다운 추억조차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찬란했던 봄날은 다시 오나 싶다.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추리작가 김성종이 2001년 미국 뉴욕의 9·11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 제목이 그렇다. 국제신문에 실린 연재소설을 9·11테러 발생 딱 5주년인 2006년 9월 11일에 3권의 책(남도 출간)으로 묶은 이 작품의 제목은 테러단체의 작전명이다. 사상 최초의 미국 본토 공격을 단행하는 테러집단이 해당 지역 인간들에게 더는 봄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남다른 결기가 묻어 있다. 현실세계에서도 성공한 테러 공격으로 미국 본토 사람들은 상당 기간 봄이 와도 봄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2020년 바이러스 공격은 전 세계의 봄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봄날의 예년 풍경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매년 이맘때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자녀의 고사리 손을 잡고 조심조심 학교 가는 길을 이끌었던 학부모 초년생들은 한숨만 깊어간다. 그제 3번째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새 출발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어린 자녀가 안쓰럽다. 신입생들의 풋풋한 패기가 빛나야 할 대학가는 생기를 잃었다. 혹자는 고삐 풀린 새내기들의 걸판진 술판이 벌어졌을 3월 대학가 풍경이 그립다고 한다. 곳곳이 눈 부실 벚꽃 시즌이 다가오건만 상춘객은 그림자도 보기 어렵게 됐다. 프로야구 시즌은 언제 오픈하나. 부산 사직야구장 주변 상가에는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4년 전의 봄날은 요란했던 기억이 새롭다.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 분위기가 확 달아오르면서 출사표를 던진 각 당 후보들의 큰 몸짓과 목소리까지 보태진 그해 봄 유권자들은 올바른 주권행사를 벼렸다. 하지만 새로운 국회를 구성할 4·15총선 바람은 전염병 창궐에 밀려 맥을 못 춘다. 유권자들은 선거보다 마스크 구매를 위한 약국 앞 줄서기에 신경이 더 곤두선 형국이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간 지금, 이전 세월 봄날의 풍경과 기억들이 그때 그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겨질지 모르겠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해온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반드시 이겨내야 할 이번 사태가 던진 혼돈을 잊고 잠시 여유를 가질 만한 딱 좋은 날씨다. 봄은 다시 올 것이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