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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가장 멋진 배경 /정희경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9 18:38:5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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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영혼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코러스를 넣으니까 정말 달라진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합정역 5번 출구’의 가수 유산슬이 자신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는 김효수에게 보내는 감탄이다. 실제 ‘합정역 5번 출구’는 김효수의 코러스가 입혀져 곡이 더욱 깊고 화려해졌다. 가수보다는 코러스가 더 좋다는 김효수는 24년간 가수의 뒤에서 가수를 빛내주고 가수의 노래를 풍성하게 만드는 자신의 역할에 행복하다고 한다. 코러스에 대한 열정과 노력, 자신감이 “코러스는 가사를 읊을 수 있는 악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코러스 김효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가수 혹은 가수의 노래에 있어 김효수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 배경은 조연이 아니라 또 다른 주연이다. 이 배경이 없다면 노래는 무미건조할지도 모른다. 김효수는 가수와 그의 노래를 빛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도 한껏 빛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경이 ‘주인공을 빛나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는 본연의 자세와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배경 스스로가 또 하나의 객체로 우뚝 섰기 때문일 것이다.

이경희의 수필 ‘현이의 연극’ 속 현이가 떠오른다. 연극 ‘숲 속의 대장간’에서 많은 풀잎 중의 하나인 역할을 맡은 현이는 자기 역할에 충실했고, 자기의 실수를 엄마가 보았을까 염려했다.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 않는 역할에 실망하고 서글퍼한 엄마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진 현이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수필 속의 현이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그러나 가장 멋진 배경이다.

주인공과 배경에 있어 대·소와 강·약의 차이는 없다. 더 강한 쪽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더 작은 쪽이 배경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주체는 때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 배경에 무조건 의지하지 않고 배경 또한 독립적인 객체로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배경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힘을 가졌지만 겸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절대 주인공을 가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과의 조화에 힘쓴다. ‘BTS’와 ‘기생충’은 온 세계를 감동시키며 대한민국의 멋진 배경이 되었고 중국 우한 교민들에게는 조국 대한민국이 고마운 배경이었을 것이다. 많은 지지자는 정치인의 든든한 배경이며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로 역할을 다할 때 국민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좋은 배경을 가진 주인공은 아름답다. 작은 안개꽃에 둘러싸인 빨간 장미가 더 돋보이기 마련이다.

2003년 미국의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며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뉴욕 일대의 전기를 차단한다고 했다.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터널을 모두 막아 차와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고 맨해튼에 있는 차와 사람만 내보낸다고 했다. 버스도 지하철도 모두 정지 상태이고 오직 페리만 운행한다고 했다. 많은 것이 전기로 돌아가는 미국에서 전기를 차단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임을 직감한 우리 가족은 몹시 불안했다. 9·11 테러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이라 이방인인 우리 가족은 더욱 그랬다.

그런데 차가 다니지 않는 자연사박물관 앞 넓은 도로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 나와 축제처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즐기고 있었다. 테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그들은 여유로웠다. “우린 조국을 믿어.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고 우리를 보호해 줄 거야. 여긴 USA잖아. 차가 안 다니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우리가 차가 되어 보는 거야.”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들의 말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의 단순한 사고로 밝혀졌지만, 그날 밤까지 정전이 되어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사람들이 몰려 혼란을 겪기도 했고 몇몇 곳에서는 정전을 틈타 슈퍼마켓이 습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태보다 자신의 조국을 든든한 배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우리나라가 나의 든든한 배경이면 좋겠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나라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지금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다. 전국에서 달려온 119 구급대원, 의료진, 자원봉사자, 응원과 성원을 보내는 시민…. 이들은 모두 환자의 배경이다. 배경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닫힌 우리의 봄은 곧 활짝 열릴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찬란한 봄을 위하여 대한민국이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돼 주리라 믿는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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