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국내 개봉됐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이 요즘 들어 화제다. 코로나19 사태와 내용이 놀랍도록 닮아서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확진·사망자가 속출하는 모습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 거다. 더 인상 깊은 장면은 최초의 감염경로를 보여주는 영화의 끝부분. 요약하면 이렇다. ‘글로벌 개발업체가 나무 숲을 마구 없애버린다. 여기서 밀려난 박쥐 무리가 민가 근처로 날아든다. 뒤이어 박쥐의 병균이 축사 내 돼지로 옮겨지고 그 돼지를 재료로 쓴 홍콩의 식당 요리사와 손님으로 연이어 전파된다’. 이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스토리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생태계 파괴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전염병을 초래한다는 경종이다. 저명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이 2017년 펴낸 ‘인수 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는 그걸 극명하게 말해준다. 이 책 번역자의 설명을 빌리면,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옮겨져 발생하는 것이 인수 공통 전염병인데, 코로나19가 바로 그것이다. 즉 생태계의 급속한 파괴로 동물 서식지가 줄면서 인간과의 접촉면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동물 병원균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지고 수많은 돌연변이도 생겨나게 된다는 의미다.
더 섬뜩한 것은 현 추세로 가면 코로나19보다 더 센 전염병이 몰려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화석연료 등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의 양상이 갈수록 더해서다. 사상 최악의 호주 산불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속출하는 홍수, 폭염 등의 기상재난이 이제는 아예 만성적 현상으로 굳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도 올라간 상태인데, 그보다 0.5도 이상 더 상승하면 지구 생명체가 엄청난 위험에 처한다는 경고가 숱하게 나왔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극히 미진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최하위권 수준이다. 국제기구의 ‘2020 기후변화 대응지수 보고서’만 봐도 평가대상 61개국 중 58위에 머물렀다. 국제기후정책분석기관의 최근 평가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이러니 미래 세대는 불안하고 절박하다. 급기야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환경운동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19명이 지난 13일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피청구인은 대한민국 정부다.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이자 ‘세대 간 소송’인 셈이다. 이들은 “정부의 실효성 없고 허울만 좋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계법 규정 탓에 생명권과 환경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같은 헌법적 기본권이 침해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외침에 기성세대는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실 기후위기에 둔감한 것은 여야 정치권이 더하다. 그간 국회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걸 본 적이 없다. 국내 350여 단체의 ‘기후위기비상행동’ 등이 4·15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에 관련 정책을 질의한 결과도 매한가지다.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0)와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세 도입, 탈석탄 등과 같은 중요 과제에 미온적 자세를 나타내서다. 게다가 어느 정당은 탈원전 폐기에만 매달릴 뿐 다른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총선이 중요하다. 정권심판과 야당심판에 못지 않게 기후대응에 대한 심판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유럽 각국 선거에서는 벌써부터 녹색바람이 거세다. 탈탄소 기반과 친환경 등을 내세운 정당의 원내 약진이 두드러진다. 우리 유권자의 인식도 예전과는 다른 듯하다. 지난달 전국 1000명 대상의 여론조사가 그렇다.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정당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10명 중 8명꼴로 집계된 것이다. 아울러 기후위기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국회 차원의 기후비상사태 선언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80%대로 나왔다.
기후재앙의 경고음은 더 커질 게 뻔하다. 지난겨울만 해도 국내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2.5도나 높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유럽환경청은 기후재난이 더욱 잦아지면서 생태계와 인간 건강, 경제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며 긴급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해결책은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신작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린 뉴딜’로 보인다.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 혁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경제와 사회,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는 게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위기가 가장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무시무시한 신종 전염병의 창궐이다. 전염병은 한 지역, 한 국가, 그리고 보수·진보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다. 따라서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국내 연대와 세계적 협력은 기후위기 대응으로도 연결되어야 마땅하다. 우리와 미래 세대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