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와중에 우리 정당도 일종의 정치적 팬데믹(유행병) 수렁을 헤매고 있다. ‘비례정당’ 후폭풍이 바로 그것. 비례대표 선출용 위성정당 카드를 가장 먼저 빼든 미래통합당은 지난주 이른바 ‘한선교의 난’을 진압하느라 아주 혼이 났다. 비례정당으로 만든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제맘대로’ 비례후보 명단을 확정해버린 것. 발끈한 모당(母黨), 통합당은 한국당 지도부를 하루아침에 갈아치웠다. 당연히 공관위도 전원 물갈이됐다.
더불어민주당도 시끄럽긴 마찬가지. 애초 ‘꼼수’로 매도하던 비례정당에 돌연 입장을 바꿔 참여한 것도 문제이지만, 정치적 이득만 앞세워 군소 진보 정당 뒤통수를 쳤다는 욕까지 먹는다. 지역구 투표에서 거대 정당 과다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앞장섰던 정의당은 말 그대로 망연자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할수록 비례대표 몫이 줄어드는 연동형 제도의 특성을 이용해 꿈꿨던 원내 교섭단체는커녕 현재 의석(6석) 지키기도 버거울 처지로 내몰렸다. 민주당의 비례정당 연합 파트너로 거론됐던 민중당 미래당 녹색당 등 다른 군소정당도 또 다른 희생양이다. 통합당의 비례정당 ‘꼼수’에 맞서는 데 힘을 보탠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자존심을 굽혀가며 민주당 주도 비례연합당에 참여하려 했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모든 정당이 ‘비례정당 팬데믹’에 감염된 1차적 원인은 그들 자신의 탐욕에 있다. ‘의석수 우위’를 최고 가치로 두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속물근성 말이다. 그렇지만 정당의 욕심이 마치 ‘역병’처럼 만연하면서 너도나도 비례정당 ‘꼼수’에 매달리게 된 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 개정 공직선거법은 비례후보 선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항을 도입했다. 제47조1항의 “정당은 (비례후보 선출 시)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는 대목.
당내 공정한 경쟁 없이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전략공천의 길을 사실상 불허한 셈이다. 애초 비례정당을 만들어 마음대로 후보를 내리꽂으려 했던 통합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래서였을까. 중앙선관위가 결정적 미스를 범한다. 비례정당인 한국당 공관위에서 비례대표 후보자를 뽑고, 순번까지 부여한 다음 선거인단에서 찬반 투표만 거쳐도 ‘민주적 절차’로 인정하는, 이른바 ‘선 추천, 후 추인’ 방식을 용인한 것. 연동형 비례제의 독일과 뉴질랜드 정당들이 당원총회 또는 특별대의원대회에서 후보 순번까지 결정하는 것에 비하면, ‘깜깜이 공천’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이렇게 만들어져 선거인단 인준까지 받았던 명단마저 모당인 통합당 지도부의 한마디에 재투표 끝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점령군처럼 통합당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온 새 지도부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공천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이번엔 통합당 의중을 철저히 반영할 것이다.
민주당이 참여하는 더불어시민당 공천행태 역시 오십보백보다. 시민당도 공관위가 비례후보를 선발해 추천하면, 선거인단 투표로 추인하는 방식이다. 여기다 민주당에서 내려보낸 비례후보들은 ‘언터처블’. 이미 민주당 내부 절차를 통해 순번이 정해진 만큼 시민당은 이를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상 완전 별개 정당이지만 모당의 정치적 입김이 작동되는 구조는 통합당과 꼭 닮은꼴이다. 중앙선관위는 두 거대 정당의 비례정당에서 벌어지는 일을 ‘민주적 절차’로 보는 것일까. 아직 가타부타 말이 없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중앙선관위로서는 정당 내부의 후보 추천 활동에 개입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보수야당으로부터 정치적 편파성 지적받고 있다면 더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비례정당이 표심을 왜곡하고, 거대 양당 간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당연히 유권자의 실망은 커지고 그만큼 투표율은 반비례, 곤두박질친다. 와중에 한국 민주주의 골병은 깊어간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중앙선관위가 나서라. 정치 팬데믹 현상에 대한 대책도 방역만큼 과감하고 선제적이어야 한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