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전직 시장 출신들이 초반 돌풍을 일으키거나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 도시와 시장의 역할이 새삼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샌더스 후보는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을, 부티지지 후보는 인디애나주 사우스 벤드 사장을, 블룸버그 후보는 뉴욕 시장을 각각 역임하면서 평판을 쌓고 역량을 검증받았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에서 도시 정부는 주정부 나아가 중앙(연방) 정부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만큼 시 정부에 대한 시민과 유권자의 지지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가 지도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게 아니다. 대체로, 시 정부·의회, 주 정부·의회, 연방정부·의회를 단계적으로 거치면서 내공을 쌓고 타협과 양보의 정치력을 배우고 연마하면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조정하는 역량을 키워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적 거목으로, 미래 국가 지도자로 성장해나간다.
2018년 3월 시카고 시 정부는 85억 달러 규모의 오헤어(O’Hare)공항 터미널과 탑승구 현대화 사업과 15억 달러 규모의 활주로 확장 사업을 발표했다. 연방정부로부터 한 푼의 경제 지원 없이 시카고 시 정부가 직접 소매 걷어 올리고 항공사와 협상을 벌여 불과 2년 만에 사업을 확정한 것이다. 모든 소요 재원은 항공기 탑승객 증가에 따른 운임 수입에서 나온다. 이 프로젝트는 공항 터미널 공간을 거의 두 배로 넓히고 탑승구 수를 현재보다 33% 이상 늘리며 신활주로를 추가하고 구활주로를 개조해 일일 항공편 40% 증가를 예상하는 사업이다.
오헤어공항 현대화 사업은 오늘날 선진국 전체에 걸친 더욱 큰 추세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라 하겠다. 즉, 중앙정부가 허약하고 마비되고 고장 나 있어, 도시와 시장이 그 공백을 채워주고 있다. 정부의 대다수 일상적 기능은 이제 도시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시장들은 기후변화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이민과 인프라 문제를 다루면서 교육, 불평등, 보건, 주택, 테러리즘 및 범죄 같은 문제와 씨름 중이다.
람 에마누엘 직전 시카고 시장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 기고문을 통해 이를 새로운 ‘도시 국가들’이라고 진단하고 지방정부들이 어떻게 외교정책을 성안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역사 흐름을 내다보고 국가 권력 추의 이동과 새로운 시대의 대두를 예견하는 듯하다. 유럽의 12개국 이상 중앙정부는 소수당 정부로서 국가적 과제를 다루려고 하면 항상 정체와 체증을 겪는다. 미국의 사정도 나을 게 없다. 미국은 소수당이 집권하지 않을 때도 국정이 마비될 정도까지 대결이 심각하며, 지난 20년간 중요 법안은 여당이 행정부·입법부를 동시에 차지했을 때만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도시 정부’는 불만을 품은 사람에게 다른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 도시는 ‘기능’이 ‘역기능’을, ‘친밀감’이 ‘거리감’을, ‘신속성’이 ‘망설임’을 대체하는 곳이 됐으며 도시 구성원이 관여해 정책과 결과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미국의 주(州)가 뉴딜정책 등 중요한 아이디어의 실험실이었으나 지금은 시(市)가 중요한 구상의 실험실이 되고 있다. 이렇게 산출된 훌륭한 아이디어는 미국 내 도시뿐 아니라 전 세계로 전파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종종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이다.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대학, 기업 및 지방정부와 파트너십으로 테크놀로지 허브(technology hub)를 창설했을 때 수십 개 도시가 따라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착한 시장은 모방하나 위대한 시장은 훔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게다가 도시는 ‘당론’을 넘어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시장들은 이념에 상관없이 서로 협력한다. 정부 역할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다를지 모르나, 지방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일을 완성하고 주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며 여기에 많은 이념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고 본다. 도시들은 연방 정부 채널 밖에서 상품과 아이디어 그리고 혁신을 거래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전직 시장들이 돌풍을 일으킨 올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초반전은 부산시가 ‘자매도시와 맺은 관계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가꾸고 돌볼 것이냐’를 골똘히 생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 설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람 에마누엘 전 시카고 시장이 던진 화두는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에 큰 시사점을 안긴다. “새로운 도시국가들”에 관한 분석과 예견은 부산시가 21세기형 창의적 시정 과제를 발굴해 세계와 소통하도록 권장하는 메시지 발신이기도 하다. 도시가 외교정책을 성안하는 시대를 맞아 글로벌 도시외교의 창을 활짝 열면 좋겠다. 마침 시카고는 부산시와 자매도시다. 우선 시카고시와 도시외교 협의회를 출범시켜 모범사례를 공유하면서 협력의 지평을 넓히기를 기대해 본다.
전 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