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는 영국 공연계 거장 앨런 베넷의 대표작이다. 영국 쉐필드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우수한 학생들이 옥스브리지(옥스퍼드 +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룬다. 무대는 1980년대 영국 한 공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8명과 선생님들의 관계를 그린다. 2004년 런던에서 연극으로 상연됐고, 토니상에서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역사를 정의해 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역사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릿지 군이 “역사는 빌어먹을 일 하나 일어난 다음, 또 빌어먹을 일이 이어지는 그런 빌어먹을 일의 연속이지요”라고 답한다. 발칙한 대답이긴 하나 생각해 보면 일리 있다. 릿지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빌어먹을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를 곤경에 빠뜨린 일은 수없이 많았다. 전쟁 질병 재앙의 연속이다. 앞으로 또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위기 상황일수록 언론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역사적인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 발신이 필요하다. 특히 가짜 뉴스가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지금 정통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언론 자체도 위기상황에 직면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얼마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9 신문산업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신문 산업은 전년도 대비 종사자 규모가 감소했다. 신문산업 전체 종사자는 4만1162명으로 2017년 대비 2.8% 줄었다. 그중 기자직 종사자는 2만6213명으로 전년 대비 5.3%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마 현재는 더 줄었을 것이다.
기자직 종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신문 본연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다. 전체 종사자 대비 기자직 비율은 종이신문(62.4%)보다 인터넷신문(65.4%)이 높게 나타났다. 지역신문은 더욱 힘든 상황이다. 지역별로는 전체 기자직 55.9%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지역신문이 꾸준히 독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신문을 비롯한 지역 미디어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전국 신문 발행 부수가 1200만 부 이상 줄었고, 발행 부수와 광고 수입이 감소해 전국적으로 폐간·휴간되는 신문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일본의 지역신문은 위기 극복을 위해 새로운 보도 형태를 도입해 신문 독자를 되찾아 오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후쿠오카지역 ‘니시니혼신문(西日本新聞)’은 독자와 시민을 먼저 찾아가 의문이나 고민을 취재하는 독자 시점 보도방식, 즉 ‘당신의 특명 취재반’을 꾸려 새 활로를 모색한다. 일반적 취재방식은 기자가 문제의식을 갖고 행정당국이나 담당부서를 찾아가 취재·보도하는 형태다. 그러나 ‘당신의 특명 취재반’은 기자가 먼저 독자·시민에게 찾아가 일상에서 불편한 점이나 궁금한 점을 묻고, 그 사안을 갖고 관계 당국에 가서 취재·보도하는 형태다. 친독자적 보도방식이라 할 수 있다. 독자와 함께 지역 과제를 해결해 가는 ‘과제 해결형 저널리즘’이다.
기자는 독자를 직접 찾아가기 전, SNS 같은 온라인을 통해 독자 의견을 모으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독자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해 성과를 높인다. ‘서일본신문’은 온라인에서 1만2000명 정도의 독자가 참여해 의견을 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돼 ‘도쿄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이 ‘당신의 특명 취재반’을 도입하고 연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국가도 신문도 어려운 시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서일본신문’ 사례는 예시일 뿐이다. ‘국제신문’만의 혁신적인 방식을 찾아보자. 끊임없는 독자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우선 독자의 아이디어를 널리 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