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는 배추와 양배추가 만나 생긴 일종의 잡종식물이다. 배추와 양배추는 생물분류체계상 같은 속(屬)이지만 종(種)은 서로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품종끼리 이종교배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진다는 게 ‘종의 합성 이론’이다. 90여 년 전 일본 도쿄대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이 사실을 증명해 세계 유전학의 궤도를 바꾼 사람이 바로 한국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1898~1959)박사다.
1930년대까지 종의 탄생과 진화는 환경에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 자연도태의 결과이며 교배 역시 같은 종끼리만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우 박사의 연구로 자연엔 적자생존뿐 아니라 상호공존의 원리도 작동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다양한 개체가 혼존해야만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고, 따라서 생태계 모든 구성원에게는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유채는 이런 우 박사 이론의 실증이기도 하다.
‘기름나물(油菜)’이라는 이름처럼 유채는 원래 기름을 짜기 위한 용도였다. 먹기도 하고 호롱불 연료로도 썼다. 씨의 기름 함유량이 30~50%로, 15~30%에 불과한 콩이나 해바라기보다 높다. 품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채밭 1200평에서 최대 400ℓ의 기름을 생산했다는 재배 결과도 있다. 경운기 한 대를 1년 내내 돌릴 수 있는 양이다. 석유 부족이 심각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채기름을 금속 표면에 바르면 마찰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국이 윤활유 용도로 한때 유채 생산에 매달렸다. 실제로 일본은 유채기름을 해군 전투기 제로센에 연료로 사용했다. 씨는 기름으로, 잎은 쌈 채소로, 꽃은 효소나 샐러드로 쓰여 버릴 게 없는 농작물이 유채다.
신혼부부의 인증샷 장소로 인기가 높은 유채밭은 한동안 제주도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봄의 전령사가 됐다. 부산 온천천에도 군데군데 잊지 않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올봄엔 코로나19로 진해군항제 삼락벚꽃축제 등 상춘제가 대부분 취소됐다. 다음 달 초까지 보다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달라는 정부 당국의 호소가 간절하다. 하지만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내음의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코로나가 촉발한 경제난까지 덮쳐 어느 때보다 힘든 날들이다. 비록 축제는 즐길 수 없게 됐지만 때가 되면 바뀌는 자연의 섭리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마침 온천천 옆 온천동에는 우장춘로와 그의 기념관이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