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조각조각 나뉘었다. 조원진당, 홍문종당, 전광훈당, 김문수당 등등. 이른바 태극기 세력들이다. 당명으로 분류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하시라. 하도 하수상하게 바뀌는 통에 제 이름을 찾아 부르기조차 버겁다. 그럼 이들의 모체라 할 만한 황교안당은 무엇이 같고 또 다른가. 여기에 한 자락 얹혀있는 안철수당은 도대체 그 성격이 뭔가. 이들의 공통점에 반문재인이 있는 것 같고 변별력은 박근혜 충성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굳이 한 두름으로 엮어보자 하니 언필칭 보수우익 세력이다.
보수우익의 공통항으로 떠오르는 것은 흘러간 20세기이다. 동서 냉전기 미국의 품에 안겨 영리하고 무모한 경제 도약을 추구했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가혹한 독재와 지역연고를 통한 벌열적 지배구조를 형성했지만 가난한 신생국의 질곡에서는 확실히 벗어났다. 그런데 그 20세기 끝자락 10여 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경영한 90년대가 자리한다. 그 시기는 보수의 시대인가 진보의 시대인가. 10초만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있다. 보수 진보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던가.
30대 완전한 성인으로 90년대를 산 내가 증언하기로 그 시기 보수정권, 진보정권, 좌파 우파 따위 분류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노태우 시기를 포함해 굳이 당시 지배적 언어를 찾자면 민주화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 시기까지는 ‘조국 근대화’ 슬로건을 사용한 고도성장기, 노태우에서 김대중 시기까지는 ‘민주화’ 깃발을 앞세운 시민주권의 구조개혁기라 할 수 있다.
흘러간 얘기를 왜 하는가. 태극기들이 흘러간 시대, 그것도 70, 8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과거사를 품고 있지만 21세기 오늘날에는 도무지 적응을 못 하고 있다. 반중친미? 그러한 국가전략은 후미진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선택이다. G20을 넘어 경제력 국방력 톱10에 이른 나라가 양 강대국 중 어느 일방으로 귀속을 택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보수우익의 21세기 리바이벌 공연도 이미 경험했다. 이명박의 성장주의, 박근혜의 국가주의 이념도 거센 국민 저항에 부딪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들은 박정희 향수에 젖은 노령층과 일부 극우화된 젊은 층을 그러모아 총선 압승과 이후 재집권의 결의를 불태운다. 놀랍다. 이들의 지지층이 무려 30퍼센트를 웃돈다.
흘러간 물이 방아를 되돌리려는 시도, 그런데도 그들이 무시 못 할 세력권을 형성하는 현실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화 불가능한 수구집단, 극우층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선진국에나 있는 10% 안팎 숫자가 실상이어야 옳다. 한국 사회가 그 정도 성숙도는 갖췄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적으로 30%를 웃돈다는 것은 집권층의 실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잘못되었는가. 코로나19 방역 같은 사회정책의 국제 평가를 보라. 외교정책 문화정책은 어떠한가. 나는 설사 성과가 미진할지라도 현 정부의 정책 방향 대부분을 옹호하고 싶고 어떤 논쟁을 해도 밀릴 것 같지 않다. 미래방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집권층의 수세 국면은 웬일인가. 현 정부는 1990년대에서 배우지 못했다. 노태우 김영삼은 서로를 품고 있었고 김대중은 김종필과 제휴했다.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의 시정이 성공적이었던 것도 가장 먼저, 열심히 지역 내 보수단체들을 찾아다니고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총선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겠다. 다만 선거 후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될 일이 있다. 일단 인간 문재인의 진실성은 세계가 인정한다. 마음에 없는 일은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6·25전쟁과 월남전에 희생되고 연평해전을 겪은 유족을 앞장서 예우하라. 각종 박정희 기념관들에 국고 지원을 더 하고,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지지층의 증오심을 완화시킬 발언을 하시라. 이재용의 법적 족쇄도 대통령 권한 내에서 도와주고 비서실장 또는 국무총리에 유승민을 십고초려라도 해서 모셔오라.
지금 태극기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이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이름하여 대통합 정치를 하시라. 기존 지지층의 상당 부분을 잃어도 한국이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길은 그것뿐이다.
시인·문화평론가